제자훈련
가남감리교회 제자훈련
12단원 전도자의 사명
1. 전도, 정말 어려운 것인가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전도하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전도는 과연 어려운 것일까요?
어느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마친 다음 축호전도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배가 끝난 후 점심도 먹지 않고 바로 가버렸습니다.
어떤 교인은 결혼식이 있어서, 또 어떤 교인은 친척이 찾아와서, 다른 교인은 몸이 아파서 일찍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결국 그 주일에 축호전도를 하지 못하고 다음 주일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이 되자 공교롭게도(?) 교인들의 개인적인 바쁜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축호전도에 나간 교인은 몇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는 미리 조를 짜서 모든 임원은 의무적으로 축호전도를 나가게 하였습니다. 그날 예배 후 어느 권사님이 목사님의 방에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누가 길거리에서 ‘주 예수를 믿으시오’라는 띠를 두르고 전도지를 나눠주거나, 집집마다 전도하러 다니는 것을 보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그렇게 하고 나가야 한다니 저는 정말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이것이 교인들의 영적인 형편입니다.
결국 문제는 주변 환경이나 전도 대상자가 아니라 바로 전도하기를 어려워하는 자신입니다.
Q. ‘전도자’하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지 생각나는 대로 써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역 광장이나 혹은 전철 안에서 큰 소리로 “예수 천당”이라고 소리치는 사람을 연상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빌리 그레이엄 같은 세계적 전도자를 연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전도자와 동일어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자는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은 전도자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정상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살았다면 그 사람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전도자인 줄 깨달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전도자로 부름 받았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을 뿐입니다.
Q. 골로새서 4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이 요청한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는 기도의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전도의 닫힌 문은 전도대상자나 불신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전도가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전도자 역시 마음 문이 꽉 닫혀 있는 것입니다.
Q. 디모데 후서 4장 1~5절을 읽고 답해보십시오.
1. 사도 바울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전도에 대하여 명령합니까?
2. 사도 바울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전도하라고 권면합니까?
3. 사도 바울은 어떤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까?
4.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5. 여러분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몇 명의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한번 꼽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 수가 적다면 원인이 무엇입니까?
전도의 역사가 일어났던 당시의 기록을 읽어보면 불신자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여서 전도가 잘된 것이 아니라, 성도가 구령열(救靈熱)에 불탔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 대상자나 불신자 안에 전도의 문이 닫혀 있는 것보다 성도 내면의 문이 굳게 닫힌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1996년 1월 31일자 신문을 보면 청주에서 1800년 전의 볍씨 아홉 알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보도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지독하게도 깨어지지 않은 볍씨다!’
1800년 동안 한 알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볍씨가 땅에 떨어져 깨어졌다면, 그로 인하여 지금 얼만큼의 볍씨가 생겼을까요?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도를 남에게 폐 끼치는 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 성도 안에 닫힌 문이 먼저 열려야 할 것입니다.
전도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억지스러운 것이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전도란 성도가 누리는 구원의 축복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셩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생생한 교제를 누리며 기도 응답의 체험을 하게 되면, 이 놀라운 삶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라 마라 서로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은 저절로 전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Q.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약속과 예언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전도하라”고 하지 않고,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은 결코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그저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오늘 결혼했다면, 그 좋은 소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 말을 하지 말라 하면 더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
Q. 만약 여러분이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알았다면, 누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겠습니까?
전도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구원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사는 길이기로 합니다.
Q. 누가복음 10장 3절과 10장 17~20절의 말씀에서 어떤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까?
전도자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의 말씀처럼 발걸음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워싱턴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멕시코에 간적이 있습니다. 매해 단기선교가 축복이지만 그해에는 특별한 축복이 있었습니다. 다녀온 모두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곳 어느 빈민 지역에 약품을 가지고 가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기도를 하는데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누가 가장 놀랐을까요? 기도한 그 사람입니다.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짜인가 아닌가 자꾸 만져봤답니다. 전도한 그 사람이 변했습니다.
Q. 여러분은 실제로 전도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 경험을 써보십시오.
2. 전도자의 영적 상태
요한복음21장17절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인 상태를 점검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많은 도구들이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주는 시금석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를 통하여 무엇을 점검할 수 있을까요?
첫째, 나는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가?
Q. 요한복음21장15~18절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부활의 주님을 목격하고도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일에 대하여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은 무엇입니까?
4. 그때 베드로는 무엇이라 대답했습니까?
5.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떤 당부를 하셨습니까?
6.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주님의 양을 찾아 먹이지 않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도하지 않는 우리의 사랑이 정말인가”를 물으십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김준곤 목사는 “사랑하라”와 “전도하라”는 두 가지 말씀이 성경 안에 나타난 예수님의 명령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소원은 어떻게든 들어주려고 애쓰는 것처럼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아무리 전도가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를 진단해줍니다.
Q.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전도에 힘쓰고 계십니까?
둘째, 나는 영적으로 떠돌아다니지 않는가?
시냇물에 종이배를 띄우면 그 배는 물결을 따라 떠돕니다. 힘없이 떠도는 종이배는 목적지가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돕니다. 떠돈다는 말은 마치 종이배처럼 힘을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도 중에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도적질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삶에서 만족한다면 바로 그것이 영적으로 힘을 쓰지 않고 지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년, 5년, 10년을 지내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합니다.
영국인으로 평신도 신학자이며 역사가이고 문학가이고 변증가였던 C.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결코 벼랑이 아니다. 그 길은 밋밋한 내리막길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간다.”
세상 어느 부부가 처음으로 이혼할 생각을 하고 결혼하겠습니까? 그러나 부부가 영적으로 떠도는 생활을 계속하면 미움과 원망이 쌓이다가 결국 어느 순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옥으로 가는 길은 벼랑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만드는 밋밋한 내리막길입니다.
하나님께 열정을 바치지 않고 주님께 온전한 삶을 바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조금씩 조금씩 주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이 바로 지옥을 향해 내리막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 나가도 별 탈이 없다고 느끼고 기도 안 해도 잘만 사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서서히 신앙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징조입니다. 현대 교인들의 최대 위기는 영적 위기감을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생명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지 못함이 비극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도는 자신이 영적으로 떠돌고 있지는 않은가를 진단해줍니다. 전도야말로 가장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한 교인에게 전도훈련을 받으라고 권면했더니 중직자인 그 교인이 말했습니다.
“세상 살기도 힘든데 교회마저 힘들게 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지금 이것도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에요.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무디 목사는 “게으른 자가 구원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매우 어려운 여건에서 기적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고통과 손해를 감수해야 했고, 순교할 믿음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성도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능력 주시는 분인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복음은 무섭게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로마 황제의 어머니조차 예수를 믿게 되었고 AD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정말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로마 국교를 선포한 후에 모든 로마 시민은 전도할 필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교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도 없이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거듭난 삶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또 어떤 고난을 받을지라도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는 순교의 각오도 없었습니다. 더 심각한 일은 세상에서의 귀족이 교회 안에서도 높은 지위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자랑을 결코 버리지 않았고 버리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갑자기 부유해졌고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막강한 권세를 가졌으나 하나님의 능력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교인들이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도란 특별히 훈련받은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교회 안에 심어놓았습니다. 이후 교회는 곧 암흑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전도가 정말 어렵게 느껴지면, 먼저 전도훈련에 참가하십시오.
전도훈련 중에 전도하기가 정말 힘들면, 동네에 사는 이웃에게 “내 말을 들어주면 천 원을 주마”하고 제의해서라도 실습해보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얼마나 전도를 잘하는지 스스로 놀라고 또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Q. 여러분이 영적 생활을 위해 힘쓰면서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셋째,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역할을 하는가?
우리가 복되게 살려면 구원받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고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해 실패한 것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그동안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내가 언제 그렇게 뜨거웠었나? 언제 그렇게 간절했었나?’하며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은혜를 받으려고만 했지 흘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통해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 성도가 예배를 마친 후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오늘 예배 중에 저는 설교를 통하여 이런저런 은혜를 받았어요. 저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제가 주신 것이라고 믿어요.” 하고 자기 입으로 말할 경우, 그는 그 은혜를 오래 간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롭다고 느꼈지만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은혜받은 모든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맙니다.
물질도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흘려보내야 계속해서 채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복의 근원이 되는 원리입니다. 전도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은혜의 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진단해볼 수 있습니다.
전도에 대한 불신자들의 차가운 반응보다 우리 안에 전도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전도하기를 원한다면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닫혀 있던 전도의 문이 열리면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복음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영국에서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가 열렸을 때 열 살 된 소녀가 “하나님,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한 후 길거리에 나갔습니다.
때마침 얼굴이 험상궂은 남자가 지나가더랍니다. 그래서 소녀는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전도하라는 사인이라고 믿고 따라갔습니다. 그러면서 “아저씨, 오늘 저녁 전도 집회 오세요.”하고 전도했습니다.
남자는 소녀의 권유를 거절하고 나중에는 위협을 하며 뿌리치려 했으나 결국 소녀의 간청을 받아들여 빌리 그레이엄이 말씀을 전하는 전도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날 그가 회심하여 주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사실 그는 마피아의 두목이었습니다.
Q. 여러분의 마음에는 전도의 문이 열렸습니까?
3. 불신자의 영적 상태
로마서 10장 13~14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리스도인들은 전도 대상자인 불신자들의 마음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전도가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는 것임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의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도만으로 불신자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복음을 증거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먼저 불신자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Q. 다음 성경구절은 불신자의 어떤 상태를 설명해 줍니까?
1. 에베소서 2장 1절
2. 에베소서 2장 2절
3. 에베소서 2장 3절, 요한복음 8장 44절
4. 마태복음 11장 28절
5. 누가복음 16장 22~23절
6. 출애굽기 34장 7절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의 진정한 형편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지위나 물질의 풍요로움만으로는 그 인생을 판단할 수 없으며 행복의 척도를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고통당하는 진정한 이유는 지식이나 무기, 혹은 양식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 4:1~6)
어느 권사님이 두 아들을 소개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큰 아들은 예수는 잘 믿는데 너무 못 살고, 둘째는 예수는 안 믿는데 참 잘살아요. 큰 아들이 걱정이에요. 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어떤 것이 못 사는 것일까요?
전도하려면 먼저 잘 살고 못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을 마음속에 확고하게 심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 마귀에게 사로잡혀 철저히 죗값을 치르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모두 멸망합니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수많은 나라들, 곧 애굽, 로마, 바벨론 등도 지금은 폐허만 남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성령님?>의 저자인 베니힌 목사님은 은혜를 체험한 후 전도 간증을 자주 요청받았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심한 말더듬이였고, 특히 긴장할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하나님, 전 말도 더듬는데 왜 자꾸 전도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라고 보내시는 겁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밤, 많은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언덕 비탈로 밀려가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여 그 너머를 보았더니 이글거리는 불구덩이가 있는 낭떠러지로 밀려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뒤에 그는 사명감을 지니고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정확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Q. 로마서 10장 13~15절
1.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2. 14~15절에 나오는 전도의 4단계를 기록해 보십시오.
( )을 받음 -> 복음을 ( ) -> 복음을 ( ) -> 예수님을 ( )
3.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까? (15절)
교인들에게 전도를 하게 했더니 대부분의 교인들이 불신자를 교회로 데려오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인도’일 뿐입니다. 굳이 그 차이를 설명하자면 전도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세상으로 나가 불신자를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인도는 불신자를 세상에서 교회로 데리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불신자 중에 교회에 한 번이라도 와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시 청소년의 경우 100명 중 90명 이상이 교회에 다녀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영적으로 방황합니다. 그 까닭은 교회에 인도를 받아 나왔지만 정확한 복음을 듣고 양육 받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수정궁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설교가 끝난 뒤, 세련된 한 여인이 슐러 목사가 쓴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목사님에게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지요?”
그녀는 매우 당황한 기색으로 가까이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지 방법을 몰라요”
목사님은 곧바로 그녀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아버지 하나님!” 하며 기도했습니다.
실제로 주일에 새 가족이 교회에 나왔을 때,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필요한 관심으로 돌봐주며, 함께 기도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새가족은 생소한 예배,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사, 분주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가서, 곧 길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갈급한 자에게 복음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구원은 삶의 현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로마서 10장 17절을 보면, 믿음은 결국 무엇에 의하여 생긴다고 했습니까?
2. 디모데후서 4장 2절을 보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무엇에 힘쓰라고 했습니까?
3.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역사가 있다고 했습니까?
지금 인천에서 목회하시는 어느 목사님은 의사였으나 뒤늦게 목회자로 부르심을 깨닫고 신학교에 입학해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목회만 하겠다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가운데 자신이 식도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의사 생활을 완전히 내려놓고 목회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교단의 진급 시험이 있던 날, 목이 너무 아파서 시험도 못 치르고 겨우 교회에 있는 방까지 와서 누웠습니다. 그러다가 “죽더라도 기도하다가 죽자”하고 강단으로 나가서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죽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와서 ‘전도하다 죽자’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교회가 세든 2층에서 아래층으로 기어 내려가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예수 믿으라”고 전했습니다. 길에 누워 힘없는 소리로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목사를 보고 길 가던 사람은 다시 돌아와 되물었습니다.
“나에게 뭐라고 하셨나요?”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고는 붙잡고 혼신의 힘을 다해 간절히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나자 목사의 다리에 힘이 생기고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참 놀랍게도 이렇게 전도만 하면 몸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깡패로 소문난 학교 선생님도 말릴 수 없는 소년을 전도했는데 아이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들은 불교신자라며 전도하러 갈 때마다 말도 못 붙이게 하던 그 아이의 부모가 “고맙습니다.” 합장하며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고맙다고 식사 대접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교회 아래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았습니다. 아래층 계단에서 깡패들이 여자를 자루에 넣고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서 기도해 주고 돌려보내기도 했습니다.
3층에 사는 건물 주인은 교회에 세를 주었으면서도 자신은 불교를 믿으니 찬송도 크게 하지 말고 울며 기도도 하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의 불량한 학생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자기 아들도 좀 돌봐 달라고 부탁하더니, 이제는 예배당에서 마음껏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여러분은 전도대상자의 마음 문을 어떻게 열면 되겠습니까?
4. 전도와 영적 전쟁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주의 명령에 순종해서 전도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대상이 귀신입니다. 귀신은 어떻게 해서든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기 전에 먼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내쫓는 영적 전쟁을 함께해야 합니다.
첫째로, 전도 대상자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불신자가 겪는 영적 시달림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이 영적 시달림을 당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도록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자살충동을 느낀 청소년이 63.4%나 된다고 합니다. 학업 문제 30.2%, 진로 취업 문제 28%, 이성 문제 11.8%로 자살의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부입니다.
몇 년 전 여중생이 서울 올림픽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면서 “공부만 하라는 현실이 지옥이다. 내가 노래방에 안 가는 것은 엄마가 무섭기 때문이다”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또 목동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여학생도 “부모님이 언니와 동생만 좋아하고 나에게는 너무 무관심하다. 학교 성적이 너무 나빠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까 두렵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심지어는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대를 들어간 학생이 1학기 성적이 떨어졌다고 자기 집 지하실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이 세상 신이 불신자에게 어떻게 역사합니까?
2. 마태복음 13장 4절과 19절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누가 말씀을 빼앗아간다고 했습니까?
이동원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가수를 전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권면하자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 지을 수 없지 않느냐?”고 묻더랍니다. 그 말에 “맞다”고 대답했더니 자신은 죄 짓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예수 믿지 않겠다고 말했답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죄짓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Q. 마가복음 9장 28~29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까?
둘째로, 마귀와 반대 정신으로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세상(가정, 이웃, 직장)의 빛이다’라고 늘 생각합니까? 불신자들은 전도자의 말을 듣기 전에 그의 삶을 주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하는 자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삶으로 전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반드시 어둠을 물리치기 때문에 삶의 빛이 되면 마귀의 간교한 방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거짓 세상에서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큰 손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가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이며 동시에 빛입니다.
미움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빛의 삶입니다. 욕심 앞에서 나눠주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마귀와 ‘반대 정신’으로 살 때 전도자의 삶은 빛이 됩니다.
Q. 베드로전서 3장 1~2절에서 불신 남편에게 어떻게 전도하라고 했습니까?
우리나라 1000만 성도 중에서 남편이 구원받지 못한 가정이 40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불신 남편을 전략적으로 전도하는 30일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성도인 아내가 30일 동안 마음에 단단히 결심하고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남편을 왕같이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반드시 “당신이 어쩐 일이야?”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내가 예수님께 기도했더니 예수님이 당신을 이렇게 섬기라고 말씀하시더라”하고 대답합니다. 잔소리, 바가지, 원망과 불평은 절대 금물입니다.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편을 칭찬하면서 “내가 정말 시집을 잘 왔다”고 말합니다. 남편의 호주머니와 가방에 사랑을 고백하는 쪽지를 넣어주고, “당신이 최고예요”라고 말하며 남편이 좋아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입니다. 남편의 기분이 좋아져서 “당신, 요즘 많이 바뀌었어”라고 말하면 잊지 말고 “기도하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답합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마음이 열렸다고 느껴지면 “여보, 내게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교회 한번 같이 가요”하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과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하기 위해 개인 차원의 영적 전쟁뿐 아니라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공중권세 잡은 자와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Q. 에베소서 2장 2절을 보면 사람들이 무엇을 좇고, 무엇을 따르며 산다고 했습니까?
선교학자들은 세계 지도에서 위도 10도인 지역부터 40도인 지역까지를 ‘10/40 창문 지역’이라고 설정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약 4000여 미전도 종족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회교, 힌두교, 불교 세력이 장악하고 있고 84%가 극빈자이고 문맹국이고 후진국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역마다 그 지역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려면, 그 지역의 공중권세 잡은 자가 꺾이고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Q. 누가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을마다 다니며 전도할 때, 하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까?
선교사들의 평가에 의하면 일본과 중국과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영이 서로 다른 것을 느끼는데 일본은 음란의 영, 중국은 탐욕의 영, 한국은 분열의 영이라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라와 도시를 찾아다니다 보면 이상하게도 한쪽 도시에서는 복음이 잘 전해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 거리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도시마다 영적인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것은 도시들을 장악하고 있는 영적인 권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영향력에 눌려 있습니다.
마귀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모든 일을 대적하면서 한 개인과 그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구원을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역 광장에 노방 찬양전도를 나가면 너무나 강한 영적 전쟁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적(敵)은 불교도나 무당이 아닙니다. 문제는 도시의 공중에서 이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권세입니다. 노방 찬양전도는 사탄의 정면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영들도 한두 번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한다고 해서 떠나는 게 아니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또 하나님을 찬양하며, 계속해서 괴롭혀야 물러갑니다.
Q. 여러분은 전도할 때 어떤 영적 전쟁을 겪었습니까?
5. 당신은 한국 선교사이다
다니엘 12장 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복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 명예, 권세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곧 구원을 받는 것과 복음을 증거 하며 사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복된 자의 자리에 거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삶의 목적을 예수님께 두어야 합니다.
목적지가 다른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어디에선가 예수님과 헤어진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예수님과 여러분의 목적이 같은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적 조건으로 택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자를 찾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셨던 이유입니다.
Q. 다음 성경구절에서 사도 바울의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찾아보십시오.
1. 고린도전서 10장 31절
2. 빌립보서 1장 20~21절
3. 고린도후서 5장 9절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고 죽으셨던 예수님은 온통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에 대한 생각뿐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하셔서도 예수님의 마음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처럼 영혼 구원이 그 삶의 목적이 된 자만이 예수님과 계속하여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머스 선교사님은 대동강 모래사장에서 처형을 당했는데 그의 목을 치려는 나졸 박춘관에게 성경을 전하며 “예수, 예수, 예수!”하면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영국 사람이었으나 한국 민족을 위한 최대의 애국지사였습니다. 그가 이 민족의 영적 죽음을 일깨웠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파송한 선우형식 선교사님은 비뇨기과 전문의입니다. 그는 집안도 부유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술을 스스로 부자 되는 일에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남아시아의 선교사로 갔습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위해 부자 되기를 포기하니 한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집니다. 사실 그는 가장 지혜로운 투자자입니다. 과감히 하늘에 위대한 투자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오직 영혼 구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빌립보서 3장 7-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모두 버렸습니다.
나쁜 것만 아니라 좋은 것도 유익한 것도 버렸습니다. 출신, 학식, 신분 등을 전부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더 붙들려서 그분을 더 알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발견되는 일들이 너무나 중요한데 그 일에 혹시 방해가 될까봐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오직 예수, 오직 전도는 너무 극단이 아니냐? 균형이 잡혀야지!”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자신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게으르고 불충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오직’이라고 해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전도도 하고’라는 자세로는 결국 전도를 못하고 맙니다. ‘오직 전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전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와 순종도 마찬가지입니다.
Q. 여러분에게 ‘오직 전도’, ‘오직 기도’, ‘오직 순종’이란 자세가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둘째로 전도자가 누릴 축복을 바라봐야 합니다.
전도에 헌신적인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권사님의 남편이 IMF 때 실직을 당했습니다. 그해 큰딸은 대학 4학년에 올라가고, 둘째 아들이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데 형편이 어려워 200만 원의 학비밖에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둘 다 대학에 보낼 수가 없어서 큰딸은 휴학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육하던 새 가족이 급한 일로 하루 앞당겨 교회에서 양육을 받고 싶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권사님은 ‘새 가족이 오늘 양육을 받고 싶다면 가야지’하고는 급히 옷을 입고 핸드백을 들고 교회로 왔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오는데 무심코 살펴본 핸드백이 날카로운 칼로 쫙 찢겨 있었습니다.
등록금 200만 원을 버스에서 소매치기 당한 것이었습니다.
순간 다리에 힘이 다 빠져버리고, 양육이고 전도고 다 그만두고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펑펑 울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칠칠치도 못한 엄마를 얼마나 원망할까?’
속이 탔지만 새 가족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내색하지 않고 양육을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였습니다. 전도부 간사님이 반갑게 붙잡고는 전도하러 가야 할 집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권사님은 간사님에게 핸드백을 보여주고 소매치기당한 사정을 말하며 오늘은 꼭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 다음 돌아섰습니다. 그런데도 간사님은 “그래도 권사님이…”하며 잡았습니다.
권사님은 결국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이고… 가야지’ 하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러고는 두 가정을 방문해서 모두 결신시키고 돌아왔습니다. 전도를 다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울었습니다.
전도부 간사님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권사님에게 큰 어려운 일이 생겼어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저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자, 권사님은 제가 왜 전화했는지를 알고 “목사님,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에 와서 한참을 우는데 하나님은 이런 일을 통해서도 역사하실 수도 있고, 나를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내가 왜 이런 문제 때문에 이렇게 울어야 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자, 왜 감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믿음으로 감사하자, 마음에 결정이 생겼답니다. 저녁에 남편이 오고 아이들이 왔는데 가족들 모두 제 걱정을 해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저는 전화하면서 그리고 기도하면서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가 춘천에 부흥회를 갔을 때 저녁집회가 끝나고 숙소로 들어오니 아내가 전화로 권사님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큰딸이 휴학계를 내려고 학교에 갔는데 지난 학기에 1등을 해서 1년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넣고, 지방의 의과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지방의 의과대학에서 전체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대학교 총장이 전화를 해서 서울대에 가지 않고 자기네 학교에 오면 6년 장학금을 다 주고, 미국 유학도 보내주고, 학교 병원에 특별히 채용해서 일할 수 있게 해줄 테니 제발 그 학교에 오라고 하더랍니다.
나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하나님께 감사했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마음을 먹고, 전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날 때 우리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부어주시고 그를 통해 교회와 그리스도인 가운데 역사하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그분의 나라를 증거하십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전도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2. 다니엘 12장 3절에는 전도자가 어떤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역사는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제일 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에게도 전도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보다, 학자보다, 장군보다, 큰 회사 사장보다 더 귀한 일이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Q. 사도행전 10장 3~6절에서 천사가 직접 고넬료를 전도하지 않고 누구를 찾아 청하여 복음을 들으라고 하였습니까?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는 미라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왕처럼 특별한 신문이 아니면 미라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돈과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전시된 그 미라는 흉측한 해골과 상한 시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꼴이 될 줄 미리 알았다면 아무도 미라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헛된 곳에 모든 것을 허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분주하게 사십니까?
헛된 데 모든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분주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역사의 흐름, 인생의 목적을 알고 진짜 되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연대장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편이 위관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지휘관 부인의 끈질긴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전도하는 그 사람이 너무나 귀찮고 싫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심판 자리에서 가장 감사할 사람은 자기를 전도해준 사람일 것입니다. 더럽다고 멸시하던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생명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전도 대상자가 귀찮아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억지로 끌려 다녔더라도 후에 예수님을 제대로 믿게 된다면 천국에 가서 ‘정말 고맙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도 권유를 뿌리친 사람은 지옥의 영원한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하면서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때 왜 좀 더 나를 강권하지 않았나요? 심판이 있다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회계하는 마지막 심판이 있다고 왜 그때 나를 강권하지 않았나요? 김 집사님, 정 권사님, 왜 나를 강권하지 않았나요? 여보, 왜 나를 좀 더 강권하지 않았소?”
Q 혹시 지옥에서 여러분에게 “왜 나에게 강권해서라도 전도해주지 않았냐?”며 원망할 사람이 생각나지는 않습니까?
Q. 마가복음 10장 17~22절을 읽고 답해보십시오.
1. 한 부자가 예수님께 무엇을 물었습니까?
2. 예수님은 이 청년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3. 예수님이 이 청년을 사랑스럽게 보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4.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5. 이 청년은 왜 예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떠났을까요?
6. 이 청년은 재산을 지킨 것입니까, 기회를 놓친 것입니까?
셋째로 우리는 하늘에서 한국으로 파송 받은 선교사라는 의식을 분명히 지녀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열방을 향하여 보냄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여기서 말하는 ‘너희’에는 우리 모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이고, 가정과 이웃, 직장, 학교가 우리의 선교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에 “전도하라”는 작은 음성이 있다면 그것이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어도 좋습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면 반드시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복음 전파에 투자한 인생은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 끝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역사가 바로 이때를 향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한 집사님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이번 주는 유난히도 길게 느껴집니다. 수학여행을 잘 다녀온 다음 날 우리 반 삼총사의 후배 폭행사건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2학기를 들어 그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잦은 지각과 함께 숙제도 잘 안 해오고 친구를 따돌려 부모 면담도 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한 주 전에는 반성문도 받아두었고, 여행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과 잘 지내기로 다짐하며 아이스크림 파티를 했는데, 그다음 날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아이는 1학기부터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불안정했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어서 이 주 전부터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교실에서 기도를 하던 기간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처음에는 낙심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3월부터 아침마다 반 아이들과 함께 번호대로 한 아이씩 장래의 꿈을 상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를 기도하며 축복송을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인성의 열매를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니 ‘하나님, 제게 부끄러움을 주시네요’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미뤄온 금식기도를 화요일부터 시작하면서 도리어 기쁨이 생기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 이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손대시는구나! 이대로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문제를 더 드러나게 해서 고치시는 구나’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Q 여러분은 어떤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깨달아지십니까? 깨달은 것을 써보십시오.
∎ 믿음 다지기
이번 단원을 예습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잠잠히 묵상해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의 음성이라고 붙잡은 내용을 한두 가지로 정리해보십시오. 그리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예습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나 성구는 어떤 것입니까?
-위의 내용을 여러분 자신의 기도로 바꾸어 써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적용하라고 하십니까?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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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12단원 : 전도자의 사명 | 김영돈 목사 | 2019-06-07 | 396 | |
12 | 11단원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라! | 김영돈 목사 | 2019-06-07 | 509 | |
11 | 10단원 : 사랑으로 사는 사람 | 김영돈 목사 | 2019-05-17 | 473 | |
10 | 9단원 : 소망으로 사는 사람 | 김영돈 목사 | 2019-05-17 | 562 | |
9 | 8단원 : 믿음으로 사는 사람 | 김영돈 목사 | 2019-05-17 | 495 | |
8 | 7단원 : 기도로 사는 사람 | 김영돈 목사 | 2019-04-30 | 462 | |
7 | 6단원 : 목자의 음성 | 김영돈 목사 | 2019-04-17 | 337 | |
6 | 5단원 : 성령 충만한 제자 | 김영돈 목사 | 2019-04-17 | 454 | |
5 | 4단원 : 나는 죽고 예수는 살고 | 김영돈 목사 | 2019-04-08 | 573 | |
4 | 3단원 :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 김영돈 목사 | 2019-03-20 | 918 | |
3 | 2단원 : 회개의 기쁨 | 김영돈 목사 | 2019-03-13 | 715 | |
2 | 1단원 : 십자가의 능력 | 김영돈 목사 | 2019-03-13 | 650 | |
1 | 오리엔테이션 | 김영돈 목사 | 2019-03-13 | 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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