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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원 :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2019-03-20 16:46:04
김영돈 목사
조회수   918

3단원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Q.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고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때 무슨 말씀이었는지 써보시기 바랍니다.

 

1.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유래를 아십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안디옥교회에서 성도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당시 사람들이 붙여준 호칭입니다. 이 호칭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까?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답이 오갈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주로 영접하여 그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냐 하는 것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고, 느껴보십시오. 정말 계십니까?

 

2.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만약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그렇게 믿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은 제 안에 계십니다라고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바로 고백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증거는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 느껴지는 놀라운 평안과 사랑과 은혜를 그 증거로 말합니다. 그것도 증거의 일부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은혜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항상 그런 마음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나 시련으로 말미암은 낙심과 좌절, 고독과 슬픔에 빠져 있을 때는 예수님이 떠나버리신 것일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습니다.

 

2004년 북경 코스타(KOSTA)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 것 같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렇게 인사할 것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모두 웃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예배 때마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교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Q. 여러분은 예수님과 싸워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싸운다면 예수님이 이깁니까, 여러분이 이깁니까?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기도, 성경 읽기, 헌신, 용서, 봉사그중에 무슨 일이라도 하나 시키려면 쉬웠겠습니까, 어려웠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해놓고 예수님을 이기고 사는 꼴입니다.

어떤 집회에서 여자 성도들에게 만약 예수님이 신랑이라면 행복하겠습니까라고 질문했더니, 이구동성으로 당연히 행복하겠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과 마음이 맞는다면 그렇겠지만,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예수님께 바가지를 긁지나 않은지 염려됩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고 고백하지만, 예수님 마음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피아노 한 대조차 옮길 수 없는 것이 교회의 현실입니다. 교인들이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원하셔도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속은 것 중의 하나가 부부 싸움입니다. 부부 싸움을 하고도 제 앞에서는 전혀 싸우지 않은 척하는 것입니다. 목사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는 것은 창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오랫동안 부부 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정말 목사만도 못한 존재라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책을 보다가 음란한 글이나 사진을 대하면 대개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일단 책을 덮고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고 나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면 안심한 듯 조심스럽게 책을 다시 펼쳐듭니다. 그러나 주위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 본 것처럼 행동합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여러분이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음란한 일에 빠져 있을 때, 거짓말을 하거나 도적질하는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여러분을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불행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너무 쉽게 죄에 의해 무너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눈만 피하면 되는 줄 압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만 없으면, 별의별 말과 행동을 다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해주십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영화를 보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이 얼마나 잘생겼는지를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어느 날 친구 부인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한 뒤, 그들에게 과일을 깎게 했습니다. 그때 요셉을 들어오게 했습니다. 요셉이 방에 들어온 순간 부인들은 요셉을 황홀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과일을 깎던 칼에 손을 베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보디말의 아내가 그러니 요셉을 날마다 보는 나는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요하면서 그 유혹을 뿌리치고 감옥에 갔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까?

 

Q.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사십니까? 아니면 실제로는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모르고 살지는 않습니까?

 

2.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에베소서 316~17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셨으며,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성령님으로 오셨습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세 가지 놀라운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둘째. 죄 없으신 예수님이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셋째. 거룩하신 성령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17:9)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 마음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은 강조하는 반면,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예수님을 정확히 아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 목사님이 제자훈련 시간에 어느 집사님을 향해 성령님이 지금 집사님 안에 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여기 계신가, 아니면 저기 계신가?” 하고 잠시 고민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안 계신 것 같은데요.”

집사님이 말하기를, 자신은 성경도 못 읽고, 기도도 못하고, 이런저런 세상 죄에 빠져 직장생활도 겨우 하고, 가정생활도 문제투성인데,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정확한 증거를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많은 성도가 예수님이 자신 안에 계신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십니까라며 탄식합니다.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고린도후서 135절에서 우리 자신이 확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 예수님이 자신 안에 계신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어떤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3. 요한복음 1418절에서 예수님은 어떤 약속을 해주셨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자신이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근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신다는 사실에만 몰두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7)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유익한 것은, 그렇게 해야만 성령님이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전6:19)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3:16)

예수님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제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방식을 통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 하고 분명히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에 오신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고백했습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2:20)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을 통해 모든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아십니다.

찬송가 162(통일 151)을 불러보십시오. 혹시 곡을 알지 못한다면 가사를 읽어보십시오.

 

부활하신 구세주 나 항상 섬기네 (다시 사신 구세주 나 항상 섬기네)

온 세상 조롱해도 주 정녕 사셨네 (온 세상 조롱해도 주 정녕 사셨네)

그 은혜로운 손길 부드러운 음성 (그 은혜로운 손길 부드러운 음성)

주 예수 나와 함께 늘 계시네 (내 평생 주님 함께 늘 계시네)

예수 예수 늘 살아 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 계시네 늘 살아 계시네

 

Q. 로마서 89~10절을 읽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에 대한 호칭을 전부 찾아 보십시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며,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내주하심으로써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늘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체험으로만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체험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우리를 속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분명히 계시는데도, 안 계신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체험을 기대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구하면 아무리 힘써 기도하고 기다려도 나를 만나주시지 않는다고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말씀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유교를 믿듯이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교제하게 해주심으로 알게 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24:32) 그러나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말씀을 풀어 설명하셨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풀어주신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보았지만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리아야하고 부르실 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이신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20:16)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만나야 바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를 알면 우리는 기도시간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Q. 에베소서 316~17절을 읽고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어떻게 계신다고 했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증거 1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풍랑도 잔잔케 하셨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행하셨고, 죽은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염려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자신 안에 내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 증거를 자세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보다 잘 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신 사람은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Q. 고린도전서 123절과 요한일서 415절에서 누구에 의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게 된다고 했습니까?

 

 

주일학교에 다니는 한 초등학생이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전도를 해도 친구들이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이유는 귀찮다는 것입니다. 저희 반에도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이 열 명조차 되지 않습니다. 교회 가자고 하면 아이들은 교회에서 좋은 선물을 주냐고 묻습니다. 그런 애들을 보면 정말 슬픕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말하면, 그때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 있느냐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저는 나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부터 믿게 됐어. 그러니 너희도 교회를 다녀봐!’라고 말했지만, 애들은 제 말을 무시해 버립니다. 예수님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라도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고백할 수 있다면, 여러분 안에는 성령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지 않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신자와 구원받은 성도는 이렇게 다릅니다.

 

Q.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 여러분의 신앙고백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Q. 로마서 815~16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은 누구 때문이라고 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기도 중에 하나님을 아버지혹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이들은 비록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절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양자의 영이 역사하지만 불신자에게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19절에서는 귀신들이 하나님을 무서워하여 떤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을 무서워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종의 영을 가진 사람의 실체입니다.

 

Q.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르십니까? 언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분명히 부르게 되었습니까?

 

셋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깨닫습니다.

 

Q. 고린도전서 212절에서 누구에 의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알게 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의 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들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만약 예배를 드리거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롭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 안에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도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은혜를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와 성도가 은혜 받는 찬양이 다른 것입니다.

 

어떤 기독교 연구소에서 예수 믿지 않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몇몇 대형 교회에 가서 예배를 참관한 뒤에 리포트를 작성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생들의 보고서에는 설교가 은혜롭다고 정평이 나 있는 교회일수록 감동을 못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소는 그 결과를 분석한 뒤, 말씀에 은혜가 없는 것이 한국 교회의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비기독교인 대학생들을 통해 한국 교회 강단을 평가해보는 것도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은혜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한국 교회 강단에 은혜가 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을 모시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깨닫지 못하던 많은 것들에 대해 은혜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가족과 교인의 존재 자체, 평소의 건강 문제와 직장생활 등 평범한 것 가운데 감사를 느끼게 하고, 심지어 고난까지도 감사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살전 5:18)

 

Q. 여러분은 어떤 순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느낍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써보시기 바랍니다.

 

4.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증거 2

 

요한일서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계십니다. 그 증거를 계속해서 말씀으로 찾아보겠습니다.

 

넷째,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Q.요한일서 412~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만약 정말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대하든지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오직 원수 갚을 마음만 생긴다면,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인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반드시 사랑하라”,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부 싸움을 했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보십시오. 처음에는 다 자기가 잘한 줄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보면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녀들이 잘못해서 야단치는 순간에도 기도해보면 부모 된 자신에게 더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와 심하게 싸우고 나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를 해보면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한 경우라 해도 주님은 우리 편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억울한 사정을 낱낱이 아뢰면서 하나님을 설득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그런 기도에 대해 네 말이 옳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네 편이 될 테니,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겨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언제자 네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용서와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도저히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자꾸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깁니까? 그렇다면 바로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 증거입니다.

 

어떤 부인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시어머니를 용서하게 될까 봐 교회에 못 나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결혼 초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는데, 주일 예배 때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순간 시어머니를 용서하려는 마음이 생기더랍니다. 결혼할 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시어머니이기에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럴 수는 없어!”라고 다짐하며 교회를 뛰쳐나와 다시는 발걸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인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듣고서야 다시 교회에 발을 들이기는 했지만 처음 교회에 나올 때부터 은혜는 제대로 받은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부부가 8년 만에 아이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아들을 보고는 순간 사랑스럽다고 여기기는커녕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아버지와 아기가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안 계신 환경이 자연스럽고 아버지가 오시면 오히려 어색해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했다고 여겼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원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곡하며 우는데, 성령님이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느냐? 내가 네 아버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아느냐? 이제 아버지를 용서하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아들의 얼굴과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아직도 진정한 용서함을 깨닫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를 애통하는 마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제 마음 중심에서 아버지를 용서하겠습니다.”

성령께 순종하여 고백한 순간, 십자가의 은혜가 뜨겁게 밀려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위해 기도는 해보았습니까? 기도하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2. 그 동안 용서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써보십시오.

 

 

다섯째, 성령의 근심하심을 깨닫습니다.

 

Q. 우리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에베소서 430절을 보고 답하십시오.

 

우리 안에 찾아오신 성령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계속 남아 계시거나 우리를 떠나시거나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완전한 구속(救贖)을 얻는 날까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설령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 안에서 근심하시며 그 근심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독특한 마음의 근심이 있습니다. 주일성수를 하지 않거나 헌금생활이나 기도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괴로움을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런 근심이 없습니다. 근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괴로움을 느끼고 근심합니다. 그 사람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근심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저 마음이 괴로운 정도로 여기지 말고, 깨달은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성령님이 근심하실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님의 근심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세례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어떤 청년이 토요일 밤에 목사님을 찾아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 헛 믿었어요. 제가 세례받은 것은 다 가짜예요.”

청년은 세례받을 때, 마음에 결심한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죄 된 생활을 청산하리라. 회식 자리에 절대 가지 않으리라.”

그런데 그는 회식에 참석하여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운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청년은 그 일로 말미암아 깊은 좌절과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까닭이 무엇이지? 오늘 자네와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괴로워하던가?”

아니요. 그들은 재미 봤다고 생각하고 집에 가서 자고 있겠지요.”

그런데 자네는 왜 그렇게 괴로워하지? 자네가 괴로워하는 것은 여전히 자네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시기 때문이야!”

청년은 제가 펴준 에베소서 430절 말씀을 읽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라는 분명한 확신을 회복했습니다.

 

어느 교회의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 그 교회 성도가 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번 부흥회 때 말씀을 듣는 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오래전 커다란 은혜를 받았으나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했고 죄도 너무 많이 지어 회개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저를 사랑하고 함께하신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부흥회 또한 어떤 기대를 갖고 참석한 것은 아닙니다. 습관처럼 참석했는데, 성령님이 근심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4:30). 저는 그날 비로소 제 마음이 무거운 까닭이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시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목사님, 제게 성령님이 여전히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성도는 성령님의 강력한 음성을 들으면서도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낸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순간 그의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언제나 함께 계시며 말씀하시는 성령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깊이 알게 된 것입니다.

 

Q. 여러분이 느끼는 성령의 근심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생각나는 대로 써보시기 바랍니다.

 

 

5.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증거 3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계십니다. 그 증거를 계속해서 말씀으로 찾아보겠습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소원을 품습니다.

 

Q. 빌립보서 2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신다고 했습니까?

성령님이 내주하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소원을 갖습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원을 이루기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불신자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본성 자체에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소원이 마음에서 생긴다면 그것을 놓치지 말고 따라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더 좋은 여건에 놓인 사람들도 있는데, 유난히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부모님을 모시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 책임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소홀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부모님을 모셔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면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결과를 선하게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광조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일본 형사는 주기철 목사님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고문했습니다. 입을 강제로 벌려 고춧가루를 탄 물을 부었습니다. 배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고는 배 위에 의자를 얹고 눌러댔습니다. 입과 코에서 붉은 물이 솟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 형사가 시키는 대로 말 한마디만 하면 아버지도 좋고 모든 가족이 편할 텐데, 아버지의 고집으로 가족 전체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집부리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의 고난과 순교에 대해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그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시고, 천국 상급을 바라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습니까? 언제 그랬습니까?

 

 

2.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일곱째, 전도할 마음이 생깁니다.

 

Q. 마태복음 1019~20절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때,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전도할 때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가장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말은 틀림없이 우리가 하지만, 그 내용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음이 그렇게 간절하고 뜨거울 수가 없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Q. 전도해보셨습니까? 전도 결실이 맺혔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그때의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이제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만약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영생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 증거는 전체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어느 한 부분만 가지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Q. 성령님이 내주하는 증거는 어느 하나만 가지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721~23절에서는 어떤 점을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주여라는 고백이 전부 성령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면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고백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내주하시는 성령님 때문인지, 습관이나 듣고 배운 것에 따라 부르지는 않았는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교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인본주의자들도 용서와 사랑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만 보고 그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전체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 안에서 마음을 정직하게 살피면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불순종하고 타락했을 때 성령을 거두어가셨습니다(6:3).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31:33; 36:26~27; 2:28~29).

그 약속은 예수님에 의해 확인되었고(1:4,8),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취되었습니다(2).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 증거를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Q. 이제는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고 분명히 답할 수 있습니까? 말씀으로 확인한 느낌은 어떻습니까? 그 감격을 써보십시오.

믿음 다지기

 

이번 단원을 예습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잠잠히 묵상해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의 음성이라고 붙잡은 내용을 한두 가지로 정리해보십시오. 그리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예습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나 성구는 어떤 것입니까?

 

 

-위의 내용을 여러분 자신의 기도로 바꾸어 써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적용하라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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