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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원 : 믿음으로 사는 사람
2019-05-17 12:18:02
김영돈 목사
조회수   495

가남감리교회 제자훈련

8단원 믿음으로 사는 사람

 

1. 당신은 믿음으로 사는가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수 믿고 받은 가장 큰 축복은 믿음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애처로울 정도입니다. 어려서부터 극심한 경쟁과 좌절과 상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길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평안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은 가졌으나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수십 년 아니 3대 혹은 4대에 걸쳐 교회를 다녀도, 목사 장로 권사 등의 직분을 갖고 있어도, 실제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드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믿음 없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Q. 사무엘상 1733~37절을 읽고, 소년 다윗과 사울 왕은 무엇이 다른지 찾아보십시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과 사울의 군대를 능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 왕과 그의 군대는 거인 골리앗의 위용 앞에서 숨을 죽이며 떨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심한 말로 모욕을 해도 대꾸조차 못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등장합니다. 그는 군인도 아니었고, 전투에 참여한 형들에게 음식을 전해 주러 온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어렸지만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소리를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입혀 준 갑옷과 투구도 벗어던진 채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만을 손에 쥐고서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물맷돌을 던져 거인 장수를 쓰러뜨렸습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 역시 소년 다윗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다윗의 믿음과 달랐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을 무찌르겠다고 나서는 다윗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삼상 17:33).”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삼상 17:46).”

정말 터무니없는 용기이고 확신이었습니다.

그들 앞에 있는 문제는 동일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다윗은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골리앗이 두려웠고, 다윗은 하나님을 믿으니 골리앗이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달랐던 것입니다.

 

Q.로마서 1423절에서는 무엇이 죄라고 하였습니까?

 

 

어느 목사님이 필리핀에 있는 선교사를 찾아갔다가 현지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배에 헌금 순서가 없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교회를 맡은 선교사에게 왜 예배에 헌금 순서가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교인들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헌금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습니다. 헌금하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 출석을 포기할 거예요라고 답했습니다.

현지인들이 교회에 나오는 주된 이유가 한국 교회에서 보내주는 구호물자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임을 목사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예배 때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선교사님은 헌금을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혹시 십일조는 하고 계시나요

아뇨, 못하고 있습니다.” “왜죠?”

한국에서 보내주시는 선교비가 충분하지 않고, 그것도차 정기적으로 도착하지 않아서 매달 생황하기가 빠듯하거든요.”

목사님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 먼 곳까지 와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는 삶이 교인의 기본적인 의무를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본을 보이지도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답답했지만 선교사를 책망할 수도 없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이 그렇게 하시면 도대체 현지 교인들이 어떻게 십일조와 헌금에 대해 배우겠습니까? 이제는 선교사님부터 무조건 십일조 바치시고 헌금도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하십시오. 얼마가 되든 모자라는 부분은 제가 보충해드리게겠습니다.”

 

목사님은 그 말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고, 그 다음 해 연회에서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을 안 하셨습니까?”

사실은 목사님 말씀을 듣고 난 후 마음이 찔려서 그날부터 헌금을 하고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활비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제가 십일조와 헌금을 가르치자 놀랍게도 교인들 역시 아주 적은 물질이기는 하나 헌금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직 넉넉하지는 않아도 이제 조금씩 자립의 가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목사님 찾아뵙고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일부러 연회 때 맞춰서 한국에 나왔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 저의 연약한 믿음을 굳세게 해주셨어요.”

목사님은 선교사의 말을 듣고 무척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 하나님을 말씀을 안 믿으면서 제 말은 어떻게 그렇게 잘 믿으셨어요?”

 

많은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재물, 명예, 권력, 지식 등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그토록 침묵하시는 이유임을 알아야 합니다.

Q.요한일서 54절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때때로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닥쳐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람은 어렵고 힘든 문제를 만나도 담대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그렇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초봄에 꽃샘추위가 닥쳐왔을 때 날씨가 매섭다고 해서 다시 겨울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온과 상관없이 봄을 기다리고 새 학기를 준비합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원칙에 따라 봄은 온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성도에게는 이 말씀 외에도 궁극적인 승리와 축복의 약속이 수없이 주어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면 어려움이 닥쳐도 담대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어린 아들이 걱정과 두려움도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선교지에서 선교 훈련 중이던 순회선교단 김용의 선교사님의 딸에게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고국으로 후송하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났는데, 문제는 20여 시간의 비행을 포함한 장거리 여행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그저 둘 수도 없었기 때문에 주님만 신뢰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떠나는 날 아침, 김 선교사님은 아버지로서 너무나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기도하던 중 갑자기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아빠 손잡고 떠나는 여행, 위험하지만 행복한 여행, 주님과 함께 가는 여행, 안전하고 아름다운 여행.”

그는 딸의 손을 잡고 이 고백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이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족함, 위험한 여행이지만 그 순간에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부르는 순간,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운 동행이 있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진리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믿음은 커지고 염려와 걱정은 사라집니다.

믿음이야말로 기적이고,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문제는 다 사라집니다. 여호수아 19절을 보면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을 때 여호수아는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나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Q.야고보서 12~3절에서 시험믿음의 시련이라고 설명하는데, 왜 시험이 믿음의 시련이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시험은 곧 믿음의 테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이겼다는 것은 매 순간 하나님을 믿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험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시련이 길어지면 많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나는 환경으로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잘되고 편안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시험이 오고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나는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환경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이미 확증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환경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선교지로 나간 선교사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는 길은 험하고 외롭고 고달픕니다. 때로는 죽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은총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환경과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숨겨져 있는 사랑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의심을 한다면, 아버지에게 야단맞고서는 성공하고 돌아오겠습니다.’라며 가출한 학생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Q.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았는지 자기 점검을 해보십시오.

 

2.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믿음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Q. 요한복음 3:16에 구원은 무엇으로 얻는다고 했습니까?

 

 

십자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정말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구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 믿음이 분명치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들은 복음의 말씀으로 양육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진지하게 말씀 양육을 받는다면, 반드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죄 사함을 통한 내적인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아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죄 사함 받았음을 믿으니 평안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부모님께 잘못을 저질렀는데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용서는 받았지만, 평안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진짜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서받았음을 믿을 때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을 대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도 꼭 그와 같은 것입니다.

Q. 아래 두 성경구절을 읽고,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적어 보십시오.

 

이사야 53:5

 

마태복음 8:17

 

 

믿음으로 얻는 것은 구원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다른 은혜를 우리가 누리는 것도 구원의 원리와 동일합니다.

구원의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치유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치유함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병을 대신 지시고 우리를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면, 치유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기도 응답이나 승리하는 생활, 축복을 누리는 원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성도는 구원받음에 대한 믿음은 있는데 기도 응답에 관한 믿음은 없습니다. 어떤 성도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또 어떤 성도는 축복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승리와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들을 실제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리는 것,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Q. 여러분에게 필요한 믿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이 세상에 증거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우리를 통해 하십니다.

우리는 대두분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돈이나 우리 능력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일을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과 사역의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판단과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가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셔서 기적을 일으키시며 간증거리를 만드십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사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나 당시 영국의 어떤 선교단체도 그를 중국으로 파송해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한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나를 중국 선교사로 부르셨으니,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고 입히며, 살게 하실 것이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

믿음으로 살겠다고 답을 얻은 그는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중국내지 선교회라는 엄청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자임을 알게 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얼굴 표정과 분위기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얼굴 표정만 보면 주위 사람들 중에 가장 부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평안과 감사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모습으로도 믿음으로 사는 증거는 나타납니다.

 

어느 건물의 입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많고 옷차림도 허름했습니다. 그러나 늘 밝은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한번은 건물의 주인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표정이 항상 밝으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제 걱정을 트럭에 담으면 아마 100대 분량도 더 될 것입니다.”

주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까.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할머니는 행복한 삶의 비결을 들려주었습니다.

제겐 특별한 비결이 하나 있어요. 저는 고통이 닥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던 사흘을 생각하면서 기다리면 사흘 뒤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뜬답니다.”

 

Q. 사람들이 여러분의 표정을 보면, 여러분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까?

 

 

 

성도에게는 두 차례의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하기 전에 감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공한 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가 결과를 보기 전에는 감히 나는 이겼다.”라고 고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면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얼마든지 나는 이겼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질고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심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모든 죄와 저주, 그리고 실패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까? 누구를 위하여 부활하시고 승리하셨습니까? 바로 예수 믿는 우리를 위하여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를 곧 우리의 승리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얼마든지 이겼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분이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주신 승리를 믿고 나는 이겼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시는 분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해보십시오

 

3. 어떻게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누가복음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누구나 큰 믿음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큰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첫째, 큰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Q. 누가복음 175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였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은 믿음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살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큰 믿음을 가지려면 자신이 믿음으로 살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대로 분명히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분명해야 새로운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삽니까?

 

한 친구 목사님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식구들에게 두 가지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절대 아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의료보험이 너무 비싸서 보험에 가입할 수 없으니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학교 교정에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목사님의 아들이 눈썰매를 타면서 앞에 있던 아이를 피하다 그만 나무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는 아빠에게 이 아이가 묻더랍니다.

아빠, 미안해. 이제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아들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아이가 불쌍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돈 걱정만 하는 아빠로만 보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 삶의 모습을 어떻습니까? 가진 돈에 연연하고 어려운 형편에 좌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 개척교회 부흥회에서 누군가 예금 통장을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도장과 통장은 다름 아닌 담임목사님의 통장이었습니다. 통장에는 1000만원이 넘는 큰돈이 들어있었습니다. 차량 할부금과 건물 월세도 제대로 못 내서, 제때 월세 내는 것이 기도제목이라는 그 어려운 개척교회 목사의 통장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난 뒤 담임목사님은 성도들 앞에서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회개합니다. 사실은 그 동안 어려운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모르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1000만원을 만들었습니다. 가족에게 큰일이라도 생기면 이 돈으로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려운 교회 형편을 잘 알면서도 이 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회개하고 이 물질을 교회 빚 갚는 데 내놓겠습니다. 이제는 돈 1000만원 믿으며 살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겠습니다.”

목사님은 펑펑 울었습니다. 사모님도 교인들도 모두 다 울었습니다.

부흥회가 끝나고 교회가 달라졌습니다. 목사님의 헌신을 본 교인들 역시 물심양면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하여 어려운 재정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믿음으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하나님도 능력 없는 분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믿음으로 행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면 이것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은 말씀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여호수아 1장에는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여호수아가 두려워 떠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렇게 담대하던 여호수아도 40년 세월이 지난 뒤에 오히려 두려움과 염려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1:6),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1:7),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1:9)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을까요? 믿음을 잃고 두려워하는 자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어서 두려움에 떠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 면서, 여호수아 18절에서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떠는 여호수아에게 왜 그런 지시를 하셨는지 로마서 1017절을 찾아 답을 써 보십시오.

 

100만 명의 영혼을 구원했다는 무디 목사도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에 믿음은 번개처럼 위에서 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로마서 1017절을 읽고, 믿음은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기도하며 성경 읽는 것을 계속한 결과, 자신의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신념은 다른 것입니다. 믿음을 자신의 생각이나 다른 어떤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다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여러분에게도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해보십시오. 이것이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는 길입니다.

감리교회가 자랑하는 선교사 중에 스탠리 존스라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보냈습니다. 그의 저서로는 <디바인 예스(Divine Yes)> 가 있습니다. 이 책은 스탠리 선교사가 69세 때 선교지에서 중풍에 걸려 본국으로 돌아와 입원하고 5개월 동안 쓴 책입니다. ‘디바인 예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언제든지 하며 긍정적으로 대답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언제나 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는 중풍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간호사에게 부탁했답니다.

아침에 나를 보러 올 때 굿모닝하지 말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리에서 일어나라하고 말해주겠어요?”

그는 언제든지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일어나라!”하는 말씀이 귀에 확실하게 들려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간호사는 그런 말로 인사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환자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존스 목사 병실로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리에서 일어나라

결국 존스 목사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5개월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이나 건강하게 살면서 사역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믿음과 기분은 다른 것입니다. 애굽으로 팔려가는 요셉의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사자 굴 앞에서 다니엘의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반대로 소돔으로 이사가는 롯의 기분을 어떠했을가요? 아마 콧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아말렉과 전쟁에서 이기고 많은 짐승들을 끌고 돌아오는 사울 왕의 기분은 들떠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기분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오직 말씀으로 판단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1948년 루마니아 비밀경찰에 의해 투옥되어 20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버리게 하려는 공산당국에 의해 엄청난 고문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가 옥에 갇힌 지 수년 동안 일절 면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는데, 한번은 가족 면회를 허락하겠으니 집에다 엽서를 보내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면회 당일이 되어 면도도 하고 새로 나온 내복도 입고 마음이 들떴지만, 범브란트 목사에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엽서가 아내의 손에 들어가지도 못한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그는 끝내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몇 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 날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아이처럼 들떴는데,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다니!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내게 관심이 없구나

다음 날 동료들이 너도나도 아내와 가족을 만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범브란트를 비웃었습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도 했습니다. 그때 다시 방송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는 이제 그 말이 믿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데, 하나님 이게 뭡니까?”

그런데 그 순간 배교(背敎)의 때가 이를 것이라고 한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실 때 그 당시 여인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여인들도 나처럼 이렇게 절망스러웠겠지! 하지만 그들은 울면서도 예수님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그 시간 범브란트 목사님은 자신을 하나님께 다 드렸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환난과 혼돈 속에서 자신의 모든 판단까지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냥 울기만 하겠습니다. 무덤 곁에서 울던 여인들처럼!”

결국 그는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루마니아는 다시 기독교 부흥의 때가 왔습니다.

넷째, 믿음으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민수기 125~33절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가 나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현실에 충실한 보고요, 객관적인 보고였으나 한 가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의 보고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3:30).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말이 가져오는 결과는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과 그 보고를 듣고 낙심하며 모세를 원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14:28)

우리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시행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 불신의 말을 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영어 회화를 공부하듯이 믿음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입은 부정하여, 언제나 부정적인 말, 인간적인 말, 계산적인 말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5~6절에서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때 빌립이 대답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6:7)

대부분의 성도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수 없는 말만 쏟아 냅니다. 그래서 성도를 쫓아다니면서, ‘, 하나님 저 말대로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형편입니다.

 

Q.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고 가장 먼저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65~7)

 

 

다섯째, 믿음의 훈련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역경과 환란도 감사할 이유입니다. 믿음도 성장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면 10년 뒤, 20년 뒤에는 그 햇수만큼 믿음이 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 전도단 사역자들은 매일매일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그렇게 사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짐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 전도단 사역자들이 전 세계로 급속히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은 매 순간 하나님을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전도단 창시자인 로렌 커닝엄은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일하게 하시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실재하심을 매 순간 확신케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 전도단 사역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마르크스주의자와 부딪히든지, 유럽에서 지성인들의 무관심에 부딪히든지, 악조건의 환경 속에서 사역하든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산다는 것(8:2~3)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대하 16:9)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려는 과정 중에서 홍해를 건널 때와 요단 강을 건널 때에 사용하신 방법이 달랐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실 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를 완전히 갈라놓으신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단 강을 건너게 하실 때는 요단 강을 쫙 가른 후 건너라고 하시지 않고, 먼저 한 발을 들려 놓으라고 하신 후, 그만큼 물이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40년 광야생활 후에, 더 큰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움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1:2)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1:11)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어리석고 황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 믿는 자들의 삶 속에 그런 간증거리가 없다면, 우리의 삶이 믿지 않는 자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입술로는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정작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절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만약 우리가 현재의 불확실성을 넘어서 주님에게서 오는 좋은 것을 바라고 믿는다면, 주님은 우리의 그런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며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여섯째,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Q. 제자들은 언제부터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전도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열려 확신에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문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하심을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은 매 순간 성령님께 반응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결교단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이성봉 복사님은 늘 왼손을 주먹 쥐고 다녔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주님의 손을 잡고 가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시각화 한 것입니다.

한신대 정태기 박사님은 어느 집사님에게서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냥개가 호랑이를 나무 위로 몰아서 잡았다는 것입니다. 사냥개는 그동안 주인의 총 한 방이면 어떤 짐승도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호랑이에게도 덤벼 들었던 것입니다. 덤벼드는 개를 본 호랑이가 오히려 당황하여 주춤거리며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이 집사님의 총에 잡힌 것입니다. 사냥개도 주인을 믿음으로 인해 호랑이를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정말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때는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이루겠습니까?

 

4. 염려하지 않고 사는 길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염려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염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입니다. 염려한다는 사실 때문에 상황이 좋아지거나 개선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6:27)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염려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 중 대부분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들입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염려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나 더하게 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6:27)

 

Q. 누가복음 2134절 에 말세에 성도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술 취하고 방탕한 생활은 당연히 문제라고 여기지만 생활의 염려는 문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기준은 염려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염려와 근심입니다. 믿음이 존재하는 곳에는 염려와 근심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염려와 근심이 존재하는 곳에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계 신문에 목사님, 어깨 힘 좀 빼십시오라는 글이 있어서 읽었습니다. 두레교회 장로인 서강대 강영안 교수님이 기도원에 방문했다가 어느 목사 내외를 만나고 나서 쓴 글이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지만, 정작 당신은 과로로 쓰러져 기도원에 오게 된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기도원 뒤뜰에서 목사님에게 운동을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온몸이 굳어 있었습니다.

목사님, 힘 빼십시오. 힘 좀 빼세요. 목사님, 어깨를 낮추십시오. 힘을 좀 더 빼시고요!”

장로님은 온몸을 긴장해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목사님을 한참 바라보며 목사님도 사람의 노력과 염려로 살면 쓰러지게 되는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14:18). 여기서 고아란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요? 고아란 자기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염려하며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Q. 고린도전서 732~33절에서 결혼생활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지적합니까?

 

 

 

우리가 개인생활에 시달리고 염려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은 한정되어 있기에 개인 문제로 염려하면 할수록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막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사탄에게 속아 계속 염려하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하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염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Q. 다음 성경구절을 찾아 공통점이 무엇인지 말해 보십시오.

 

(여호수아 19, 마태복음 631, 빌립보서 46)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염려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염려하지 않고 살려면 염려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염려를 붙잡지 않습니다.

사실 아무리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도 일부러 염려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염려는 저절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저절되 되는 것의 대부분은 악한 것입니다.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화나 욕은 충동적으로, 저절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염려는 어떻습니까? 이것도 저절로 나타나는 감저입니다. 즉 염려 또한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Q. 베드로전서 57절 말씀에서 염려를 주께 맡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염려는 맡기려고 노력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해서 없어질 것 같으면 염려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염려를 주님께 맡기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위대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고 바로 체험하면 염려는 맡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돈에는 염려를 쉽게 맡깁니다. 돈이 얼마 있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집니다. 1,000원 있을 때와 10,000원 있을 때가 다릅니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짜리 통장을 가지고 있을 때는 더더욱 다릅니다. 만약 우리 통장에 언제라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는 돈이 10억 원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마도 웬만한 일에 대한 염려는 사라질 것입니다. 돈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염려가 맡겨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돈의 능력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염려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지식으로만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능력을 지식으로만 알 때는 결코 염려가 맡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체험하는 순간 염려는 자연스럽게 맡겨지게 됩니다.

 

Q. 열왕기하 614~17절에 나오는 엘리사의 종이 영적 눈이 뜨인 후에도 염려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염려가 생길 때, 염려가 사라지기까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누가복음 1038~42절에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염려가 가득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만 듣는 마리아를 보고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마리아 좀 보세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억양은 어떠했을까요?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요? 마르다의 염려 때문입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10:41)

마르다는 주님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염려하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갖고 싶으나 믿음이 애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믿음을 일으키시고 믿음을 완성시키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에게는 신앙생활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먹고 입꼬 사는 문제, 건강 문제, 자녀 문제, 장래 문제,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고 기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면,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왜 이렇게 늦게서야 믿었는지 그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둘째, 염려가 생길 때 염려 대신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대부분의 사람들은 쯧쯧, 큰일이군. 걱정이야.”하고 염려만 하지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염려하는 것을 관심을 갖는 것으로, 심지어 사랑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염려는 사랑도 관심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태를 어렵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삶에 문제가 생겨 염려될 때 믿음으로 기도하고 순종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한 대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하고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라고 종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염려가 생길 때 먼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원종수 박사님의 어머니 김철례 권사님은 집에 어떤 어려운 일이나 사면초가의 기가 막힌 사정이 생기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성경과 찬송을 넣은 가방만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꼭 전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며 믿음으로 교제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Q. 마태복음 633절 에서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먼저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5. 믿음의 장애물을 제거하라!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창세기 321~2절에는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천사들의 군대(마하나임)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천사들이 호위하러 온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도 에서가 군사 400명과 함께 온다는 말에 이젠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마음으로 먼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복음서에 너무나 대조적인 두 마을이 나옵니다.

하나는 가버나움이고 다른 하나는 나사렛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 본부였습니다. 이 마을에서 수많은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이유는 이 마을 사람들이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버나움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마태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로마 백부장(8:5~13),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2:1~12) 등이 살았던 마을입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1:34).

반면에 나사렛은 가버나움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이고 예수님의 고향이었지만,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6:5~5).

 

Q. 우리 교회와 가정이 가버나움과 같습니까, 나사렛과 같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이고 중심입니다. 믿음은 성도마다 모두 다른데,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책망 받는 믿음과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Q. 다음 성경 구절을 읽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써 보시기 바랍니다.

 

1. 마가복음 914~24

 

 

2. 누가복음 76~9

 

 

우리는 모두 큰 믿음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 안에 믿음을 무너뜨리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Q. 고린도후서 517절을 읽고 여러분의 이전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다 지나갔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무너뜨리는 장애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입니다.

 

1970년 평양 장대현 교회 신년 연합집회 때, 교회 수석장로였던 길선주 장로가 온 회중 앞에서 친구가 유언하며 맡긴 돈 200원 중에 100원을 가로챈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 때 성령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회개하지 않은 죄는 믿음의 장애물이 됩니다.

죄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회개하고 십자가를 붙어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잇는 것은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를 붙들 때 죄라는 믿음의 장애물은 비로소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부정적 자아상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들은 부정적인 말이 마음에 새겨 있습니다. “넌 안 돼, 넌 못해, 이 못난 놈아, 바보 같은 자식! 넌 맨날 그러니, 죽어라 죽어, 넌 왜 저 아이처럼 못하니.” 좌절시키는 말, 낙심의 말, 놀리는 말, 비웃는 말, 욕하는 말이 우리 마음에 부정적인 믿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10:17).” 구원의 믿음도 들음에서 나지만, 절망의 믿음, 안 되는 믿음도 들음에서 납니다.

 

고등학교시절 깊은 열등감에 빠졌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길가 빨래터에 모여 있던 아주머니들이 저 애는 어찌 저리 멋대가리가 없노, 미루나무처럼 키만 컸지 영 볼품이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때부터 자신이 여자들에게 매력이 없는 남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물론 대학 시절에조차 데이트 한 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그는 마흔 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느 날 캠퍼스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한 미국 여학생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여학생은 그의 곁에 앉더니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당신은 참 매력적이네요. 동양 사람인데도 서양사람 못지않게 헌칠하고 선이 굵은게 너무 멋져요.”

난생처음으로 여자에게 매력적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얼른 기숙사 자기 방으로 돌아와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봤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뜯어보는데 정말로 그 여학생의 말처럼 자신이 잘생겨 보였습니다. 그는 그 여학생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자신이 20년 넘게 품어왔던 잘못된 믿음을 그 여학생이 단 한마디의 말로 수정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여학생과 가까워졌고 둘은 결국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암울했던 시절에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신학대학 교수가 되었고 서울에 있는 유명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헌신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선포해야 합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셋째, ‘조상과 부모로 전해 내려온 쓴 뿌리입니다.

 

어떤 신학대학의 교수가 미국 유학 시절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주일 설교 준비를 마친 후 목사님은 한 명뿐인 장로님을 찾아갔습니다. 설교 제목이 용서하라, 사랑하라였는데 그 장로님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는 그날 장로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서울의 아주 유명한 목사였는데 얼마나 성경 말씀대로 철저히 살도록 자녀들을 가르쳤는지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많았답니다. 예를 들면, 주일에는 공부를 못하게 하고 밤 12시가 지나면 깨워서 공부하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가 미국에 유학 와서 교회의 장로가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교회 일을 결정할 때마다 반발심이 꿈틀거렸고, 그것은 애꿎은 교회 목사에게 발산되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를 향한 반발이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자기도 자녀들에게 매우 율법적인 아버지가 되어 있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날 목사님은 그 마음의 쓴 뿌리를 이해하고, 장로님과 눈물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넷째, ‘세상 가치관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직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직분을 유교적인 권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의 가치관이 세상적인 경우 믿음이 바로 서지 못합니다.

 

10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말할 수 없이 고생하던 교우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수억 원의 돈을 벌 사업이 계약 단계에 온 것입니다. 그분은 이제야 기도 응답이 된 것 같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불법에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각한 갈등에 빠졌습니다.

모른 척해야 하는가? 아니면 너무나 아쉽지만 포기해야 하는가?”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교인에게 왜 그토록 오랜 연단이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불법임을 알고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것이 갈등될 정도라면 여전히 세상 가치관을 버리지 못했다는 말이고, 연단은 더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런 불신앙적인 가치관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오지만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Q. 시편 14:1에서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까?

 

 

이처럼 우리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처리되어야 할 많은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영혼은 구원을 받았지만, 생각과 마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병들게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병든 믿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마음이 말로 병들었기 때문에 치유도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만나주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의 귀에 들릴 때, 병든 믿음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해보십시오.

 

1. 로마서 1017절을 읽고 믿음은 언제 생긴다고 하였는지 찾아보십시오.

2. 누가복음 417~21절을 읽고, 21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십시오.

 

 

항상 물질에 대해 염려하며 사는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재산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 하면서 살았습니다. 자연히 아들 내외와도 갈등이 심해졌고 늘 염려와 걱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이 권사님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이 대단히 컸습니다. 혼자되신 어머니는 늘 큰일났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사니? 돈이 있어야 하는데하셨고, 그 말이 권사님의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돈, 돈 하고 산 것입니다. 쉰 살이 넘었지만 마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0대 때의 마음으로 살아왔음을 알았습니다.

그날 그 권사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가 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늘 함께 계심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자 돈 때문에 안달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아들 내외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가정에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Q. 여러분 안에 말씀으로 해결 받아야 할 믿음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믿음 다지기

 

이번 단원을 예습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잠잠히 묵상해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의 음성이라고 붙잡은 내용을 한두 가지로 정리해보십시오. 그리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예습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나 성구는 어떤 것입니까?

 

 

-위의 내용을 여러분 자신의 기도로 바꾸어 써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적용하라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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