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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원 : 성령 충만한 제자
2019-04-17 15:31:35
김영돈 목사
조회수   454

가남감리교회 제자훈련

5단원 성령 충만한 제자

 

1. 우리 시대에 임한 두 가지 부흥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리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한 목사님이 미국의 급성장하는 교회들을 탐방하면서 시카고 제일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한 때 크게 부흥했지만 지금은 쇠퇴한 상태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 곳에서 부흥이 사라진 교회는 공기조차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의자에 앉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부흥하는 교회에서 사역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목회하는 성도들은 부흥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해주십시오.”

 

Q. 성경은 말세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예언을 합니다.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디모데후서 31~5절을 읽고 요점을 정리해보십시오.

 

 

2. 이 예언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3. 요엘서 228~29절을 읽고 요점을 정리해보십시오.

 

 

4. 이 예언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성경의 예언대로 마지막 때의 세상은 더욱더 부흥의 두 가지 열기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말세가 되면서 죄악이 부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령의 부흥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40:5)

기독교 역사를 보면 정말 그 예언대로 성령의 능력과 부흥이 점점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오순절이 이르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불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때의 성령 강림을 요엘서 228~29절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예언 성취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모든 육체에 성령이 임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의 역사는 초대 교회를 통해 더욱 강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셋째,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이후, 한동안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넷째, 1738년 영국의 존 웨슬리로 인해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다섯째,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의 부흥 시기에 성령의 역사는 더욱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여섯째, 1900년부터 1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미국, 인도, 유럽, 남미, 한국 등) 불길 같은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일곱째, 20세기 말 성령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모든 부흥하는 교회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청년 학생들은 우리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죄악의 풍조에 휩싸여 있습니다. 반면에, 놀라운 것은 청년 학생들이 우리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성령 충만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청년들 사이에서 예배의 열기와 선교의 열기가 얼마나 뜨겁게 불타오르는지 모릅니다.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1. 사도행전 14절을 읽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써보십시오.

 

 

2. 에베소서 518절에서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했습니까?

 

 

예수님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이미 구원 받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는 집사를 택할 때, 반드시 성령 충만한 성도를 택했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6:1~6)

 

Q. 당신은 두 가지 부흥의 흐름 중에서 성령 충만의 흐름 속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2. 성령의 능력에 대한 약속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우리에게 부어주실 성령의 역사를 두 가지 물로 비유하여 설명하셨습니다.

 

Q. 요한복음 413~14절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무엇에 비유하셨습니까?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이 샘물을 마시고 소생하듯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죄와 마귀의 종노릇하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속죄의 은총을 받아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것이 샘물과 같은 성령의 역사, 곧 생명의 역사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1. 여러분 안에는 생명의 역사가 분명하게 일어났습니까?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2. 요한복음 737~38절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무엇에 비유하셨습니까?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강에 비유하셨습니다. ‘샘물은 물이라는 면에서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량과 역사하는 차원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목마름을 해결하고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시원한 샘물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강은 동식물과 바다까지 소생시키고 도시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큰 강이 있는 곳에 도시가 서고,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이 미치는 힘은 광대합니다. 에스겔서 47장에서 에스겔은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처음에는 발목, 다음에는 무릎, 그 다음에는 허리에 차더니, 결국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Q. 에스겔서 479, 12절에서 강은 어떤 역사를 이룬다고 했습니까? 자세히 찾아 써보십시오.

 

 

예수님이 강에 대해 말씀하신 뜻은 강 같은 은혜의 역사, 곧 성령 충만한 역사를 가리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7:39)

곧 도시가 소생하고, 민족이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도에게 능력을 줍니다. 물론 생명을 얻는 것이 능력을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얻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만 있고 능력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성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과연 어떤 능력이 생길까요?

 

첫째, 성령 충만을 받으면 이길 힘이 생깁니다.

죄를 이길 능력 (요일5:18)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봉사도 많이 하고, 착하다고 소문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는 술김에 강도. 강간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품이 온유한 것이 죄를 이기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 없이는 죄를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마귀를 이길 능력 (요일3:8)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 사람들에게 설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10:3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마귀를 제압하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고치시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물리치시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셨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마귀와 싸워 이길 수도 없고, 마귀가 하는 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능력 (16:33)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둘러싸인 한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악한 영, 세상의 영이 지배하고 있는 곳입니다. 세상의 영이 역사하는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성도가 한동안 직장 식당에서 식사기도를 할 자신이 없어서 점심식사 전에 화장실에서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이 의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 없이는 식사기도조차 제대로 못하고 삽니다.

 

자아를 이길 능력

우리가 가장 이기기 힘든 대상은 바로 자신, 곧 자아일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자아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1. 사사기 212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살았다고 했습니까?

 

2. 이렇게 사는 것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러분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사는 것 자체가 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든, 나라든, 싸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모든 사람이 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 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성은 우리의 생각 속에 배어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산다고 하면서 죄를 짓고 서로 싸우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다고 판단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은 언제나 생명과 평안을 낳습니다.

자아를 이기고 하나님의 판단과 그분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둘째, 성령 충만을 받으면 신앙생활 각 부분에 능력이 생깁니다.

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같은 사람들이지만 분명한 차이를 지닙니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고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 사건 후, 불과 50일 만에 그들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능력

베드로는 주님을 보고도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하기는커녕, 고기 잡으러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 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서야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전도의 능력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기를 어려워하고 전도해도 결실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전도에 있어서 놀라운 능력을 받게 됩니다.

존 웨슬리 목사가 173911, 피터 레인에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후 전도의 놀라운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1907년 평양에서 강력한 성령 역사를 체험한 이후였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전도의 불길을 일으킨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 (방언, 고전 14:15)

기도에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있고 영으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마음으로만 기도하는 것보다는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도생활에 더욱 큰 승리를 경험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사랑의 능력 (고전 12:31)

대전의 어느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학교 성적에서 2등을 기록한 고등학교 남학생이 효도하지 못할 바에야 먼저 갑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그 학생의 부모는 분명 아들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자살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입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설교하다가 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6:5)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이 그로 하여금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만든 것입니다.

 

봉사할 능력 (고전 12:6~1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고 봉사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기쁨과 감사보다는 힘들다’ ‘피곤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짜증을 내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인간적인 능력으로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우리에게 봉사할 능력을 부여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어떤 점에서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까?

 

 

3.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내주하신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 충만 역시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만난 어떤 성도는 성령 충만함을 아주 싫어하기도 합니다. 자기는 성령 충만한 체질이 아니고 조용하게 성경적으로 믿는 체질이랍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경적으로 믿는 체질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옳은 것입니다.

 

존 웨슬리가 성령을 체험하고 영국 교회에 성령운동을 일으키자 그의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수들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가 벌이고 있는 성령운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웨슬리는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시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교수들은 지성인인 자기들 앞에서 그런 설교 제목은 곤란하다고 난감해했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과 함께 먹었고, 그들의 눈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예루살렘에 머물며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렸고,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다음 전도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일시에 3000명이 세례를 받았고, 5000명이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님! 여러분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식사했습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기라도 했나요?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함께 먹고, 기적을 목격했던 제자들도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은 다음에야 나아가서 영혼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이야말로 반드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웨슬리의 설교를 들은 교수들이 깨어졌습니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교에 성령운동과 영적 갱신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산업혁명의 위기를 겪던 영국 사회가 변화되기 시작했고, 빈부 격차의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면서 영국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 충만을 갈망하는 성도 중에도 오해가 있습니다.

나는 원하는데 하나님께서 안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님의 전적인 주권 아래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첫째, 성령 충만의 약속을 진정으로 믿고 구하는 것입니다.

 

Q 누가복음 1113절에서 누가 누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했습니까?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이 중병에 들었을 때 어떻게 기도합니까?

돈이 다급하게 필요할 때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것이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도 그렇게 구하십니까?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여러분은 정말 성령 충만을 구하십니까?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까요?

 

 

2. 사도행전 112~14절에서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어떻게 기다렸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 (1:4)

제자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틀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흘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더 기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5, 6, 7일이 지났을 때, 누가 남아 있겠습니까?

그러나 120 성도는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었고 예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구하는 것입니다. 열흘째 되는 날,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기도하고 있는 그들에게 바람과 같은, 불과 같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운행하기 시작하더니 그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방언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약속하신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간절히, 끝까지 구하는 성령 충만함이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구한다는 것입니까?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죽었다면 그 다음에 무엇을 구할 것입니까? 예수님밖에 구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 되셨으니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주님을 갈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구할 때조차 예수님이 아닌, 체험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할 것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성공, 진학, 결혼, 영적 체험, 건강 등 여러 가지를 구하지만 그것은 정작 예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는 구할지언정 예수님, 저는 주님만을 원합니다.”라고 구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겠다는 곳이 있으면 저를 보내세요. , 있잖아요!”

전심을 다해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까? 자신에 대해 절망하지 않으면 성령 충만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정말 성령 충만을 갈망하십니까?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4.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사도행전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마지막 날 저녁 집회 때 전할 말씀의 제목이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였습니다. 그날 점심을 먹는데 어느 집사님이 목사님, 오늘 저녁 목사님이 성령 충만에 대해 말씀하신다는데, 저는 성령 충만함을 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늘 받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체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성령 충만과 체력이 무슨 상관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다시 말하기를 성령 체험을 하려면 엄청나게 빨리 박수를 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몇 번 부흥회에 참석해보니까 어찌나 찬송을 빨리 부르고 박수를 얼마나 세게 치라고 하는지, 자기는 따라하다가 중간에 팔이 아파서 박수 치는 것을 따라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따라가면 뭔가 역사가 크게 일어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게다가 큰 목소리로 주여를 세 번 외치라는데 본인은 첫 번째 주여!” 부르고는 목이 쉬어버려서 두 번째 주여가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쉰 목소리로 주여!”하다가 남이 받는 성령을 못 받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은혜 받는 것만 보다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가 성령 충만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령님께 사로잡혀 무아지경(無我地境)의 상태에서 은사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성령님에 의하여 저절로 모든 것을 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입니다.

 

Q.사도행전 532절에서 누구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겠느냐는 말은 성령 충만 여부를 분별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얼마큼 성령 충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아직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기쁨과 확신에 찬 사람, 감사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 충만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한 여성도가 이혼을 결심하고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이혼은 안 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진전이 없어서 근본적인 것을 질문했습니다.

성도님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무조건 순종하시겠습니까?”

그 성도는 머리만 숙인 채 끝까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결국 성령님 역시도 그 부부를 붙잡으실 수 없었습니다. 순종의 결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증거는 육신의 체험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로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어떤 것을 명령하시든 순종하겠습니까?”

이 중심이 변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도 성령 충만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해지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령 충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리라는 결심이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생명이고 능력이며, 스스로 충만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셨고, 홍해를 가르셨고, 나사로를 살려내신 분입니다. 성령님은 그분의 권능이 우리를 통해 온 나라와 민족에게 생명의 강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은혜의 강을 막고 있는 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둑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아입니다. 우리의 자기 의지, 자기 계획, 완고함, 불순종, 안 된다는 고정관념입니다. 우리의 완고함이 얼마나 강한지 은혜의 강도 막아버립니다.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이 둑이 터져야 합니다. 가정에서 남편, 아내, 부모, 자녀가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한다면, 강둑이 터진 것처럼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그리고 학교 안에서 은혜의 강둑이 터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강둑은 어떻게 터집니까? 우리의 고집과 불순종이 꺾이면 그 강둑은 터집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2:20)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로 고백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로 고백했을 때 고집과 불순종 역시 죽었습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강 같은 은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싶은 마음과 소원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어떤 성도가 전도하기 위해 성령 충만을 구했지만, 성령 충만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성령 충만을 구하면서 전도 현장에 나가지 않고, 계속하여 성령 충만만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구하기만 하는 것은 거짓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결심 위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랑할 수 없어요.” 하는 것과 하나님, 용서하겠으니 힘을 주세요. 사랑하기 원하니 힘을 주세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Q.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든지 그대로 하실 결단이 섰습니까?

 

 

그러면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완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순종해야 할까요?

첫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성결함 위에만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충만히 받으려면 회개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1907년 정월, 평양 장대현 장로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토록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모였는데, 집회 마지막 날이 될 때까지도 아무런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집회의 설교가 끝났는데도 역시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장대현 장로교회의 수석 장로였던 길선주 장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와서 예기치 못한 말을 합니다.

제가 아간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저 때문에 하나님이 부흥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길선주 장로가 자기가 지은 죄를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200원이나 되는 거금을 저에게 유산으로 맡겼습니다. 안심하고 맡길 사람은 저밖에 없다면서 자기 아이들이 자라면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200원을 맡았는데 100원을 급한 일에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나머지 100원만 주었습니다.”

길선주 장로의 회개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숨겨놓은 자신의 죄를 털어놓으며 통곡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무겁게 짓누르던 장벽과도 같은 막힌 담이 별안간 무너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집회 장소에 충만했습니다. 죄에 대한 애끓는 회개가 울부짖는 소리, 통곡의 소리와 함께 예배당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회가 회개의 집회로 변하여 그 후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모이면 회개밖에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계기로 한국 교회에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 이것이 한국 교회 부흥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살인, 강도의 죄를 저질렀다면 얼마나 마음이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그러나 살인, 강도, 강간만 죄가 아니라 마음의 탐심, 교만, 음욕, 미움도 같은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죄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저는 은밀히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미워한 것 용서해주세요”, “나의 교만이 사라지도록 기도해주세요”, “저는 불평 불만만 많았어요., “제가 불순종한 자입니다.”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자기 죄를 솔직히 고백하며 회개하면 그는 성령을 충만히 받았거나, 곧 성령 충만을 받을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성령께서 회개하라고 깨닫게 해주시는 죄에 대해 회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둘째,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명령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은 , 저도 순종했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순종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은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순종하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어느 종이 주인에게 받은 열 가지 지시 중에서 다섯 가지를 순종하고 다섯 가지는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 종은 순종한 종입니까, 불순종한 종입니까?

 

 

 

2. 어떤 군인이 많은 명령을 다 지켰으나 한 가지 지키지 않은 명령이 있다면, 그는 명령에 복종한 것입니까, 불복종한 것입니까?

 

 

 

마태복음 1318~23절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그 어떤 어려움일지라도 각오하고 염려와 걱정을 다 주께 맡겨버리고 말씀대로 살면, 30, 60, 100배의 복을 받는 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이 분명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교인들에게 여러분은 거지 나사로가 되고 싶습니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라고 물으면 다들 우물쭈물합니다. 천국에는 가야 하지만 거지로 살기는 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을 받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Q. 히브리서 57~9절을 읽고 예수님이 어떻게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했는지 찾아보십시오.

 

 

 

예수님도 순종을 배우신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 고난을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26:39)

성령 충만하면 순종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마음으로 순종할 때, 성령 충만이 온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보언 리즈가 쓴 중국의 예수 가정을 보면, 중국 지하 교회, 예수 가정의 지도자였던 칭 틴옌 씨는 중국 개화기의 청년으로 유교 전통에 뿌리 깊은 사람이었으나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으면서 그의 양심은 찔림을 받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가 버린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전족을 하는 등 시대감각도 맞지 않았으며 사랑도 없이 부모님의 결정으로 결혼한 여인인 까닭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네 아내를 사랑하라’(5:25)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아내가 예쁘거나 영리하거나 착할 경우라는 단서가 없었습니다. 그는 무척 괴로워하다가 결국 복종합니다.

하나님,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시니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칭 형제는 아내의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고자 했으나 전족을 한 아내는 24킬로미터의 길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칭 형제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기에, 당시 중국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했습니다. 아내를 업고 집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집 문턱을 넘어서는 순가, 칭 형제와 그의 아내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1920년의 일입니다.

그 후, 아내는 칭 형제의 훌륭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전도하게 되지만, 전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예수전도단을 만든 오대원 선교사가 1972년 서울공과대학 앞에서 서울 공대 학생들에게 전도할 때의 일입니다.

다섯 명 정도 모여서 성경공부와 찬양 모임을 가졌는데, 점점 모이는 인원이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의 사도들처럼 자신들도 성령 안에 충만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중에 나가서 전도하라는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전도하기 위해 명동으로 나갔습니다. 명동에는 다방이 많이 있었는데, 60~70명이 주님이 시키는 대로 각 다방을 돌아다녔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게 힘들었으나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기도했을 때 모두 5분 이내에 성령 충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얼마 후에는 다른 나라에 나가서 세계 선교를 하게 되리라는 확신도 주셨습니다. 당시 1970년대는 비자뿐만 아니라 여권도 안 나오는 시기였으나 그날이 올 것임을 말씀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찬양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Q. 여러분에게는 어렵지만 순종해야 한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까?

 

 

 

5. 성령 충만과 완전한 순종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은 모두 세 가지인데, 두 가지는 4과에서 배웠습니다.

첫째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하실 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령님께서 어려운 것을 요구하실 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셋째,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Q.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갑, 통장, 집문서 등은 모두 누구의 것입니까?

 

많은 성도가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기를 두려워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면 다 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빼앗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믿음 아닌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젊음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젊음을 망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꿈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게 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세상 재미를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수도승같이 살게 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것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새로운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락을 받으시고 우리의 것을 가져가시거나 남겨두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 건강,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재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안 됩니다. 이것만은 드릴 수 없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우리 것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져가시겠다고 정하면 우리가 아무리 움켜쥐고 있어도 전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도 마음대로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은 우리가 드리지 않는 한 마음대로 가져가시지 못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조차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셨으면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도록, 죄를 싫어하고 멀리하도록 만들어놓으시면 간단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Q. 창세기 221~2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도 아브라함의 마음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정말 데려가실 것이라면 그냥 데려가시면 될 것을, 왜 바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종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고백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성령의 감동이 어떠한지 써보십시오.

 

 

2. 마태복음 624절을 읽고, 우리가 선택할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보십시오.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면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코 우리가 돈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울리면 울고, 돈이 웃기면 웃으며 사는 것입니다.

 

Q. 이사야서 431절의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여러분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면 염려가 없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불만도 없어집니다. 감사와 기쁨과 진정한 사랑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의 복음만 전하고 싶어집니다. 도시와 나라들을 위해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납니다. 은혜의 강이 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하고 나면 물질로 인한 염려와 조바심, 낙심이 전부 사라집니다. 감정까지 모조리 드리고 나면 섭섭하고 억울한 것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소유권을 이전한 사람에게는 천국 가는 부자가 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분명하다고 깨달았다면 순종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완전히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부흥, 곧 성령의 기름부음이란 모든 교인 안에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어떤 길로 인도하시거나, 어떤 것을 명령하실지라도 순종하겠습니까? 이 중심이 변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도 성령 충만할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성령 충만하십니까?

 

 

믿음 다지기

 

이번 단원을 예습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잠잠히 묵상해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의 음성이라고 붙잡은 내용을 한두 가지로 정리해보십시오. 그리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예습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나 성구는 어떤 것입니까?

 

 

-위의 내용을 여러분 자신의 기도로 바꾸어 써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적용하라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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