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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원 : 기도로 사는 사람
2019-04-30 10:01:11
김영돈 목사
조회수   462

가남감리교회 제자훈련

7단원 기도로 사는 사람

 

1. 왜 기도해야 하나?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 이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의 삶의 방식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로 풀어갑니다.

 

교회와 성도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도에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에 보면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2,000년 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환란과 유혹과 재난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는 존재해 왔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모든 세력과 나라는 역사 속으로 다 사라졌지만, 교회가 사라지지 않고 더욱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이 초청받은 강연회에서 한 신학생으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의 나이 80세가 넘었을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은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의자를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 의자 앞에 무릎을 꿇고 의자 위에 두 손을 깍지 끼고 얹은 채 잠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이게 비결이오. 비결은 이것뿐이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처럼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원한다면 단순히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는 것과 기도로 사는 것의 차이를 아십니까? 많은 성도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로 살지는 않습니다. 기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가 기도생활을 바로 하지 못할 때 목사에게 미안해합니다. “목사님, 제가 요즘 바쁘고 피곤해서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큰 손해이지 목사에게 미안해할 일이 아닙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마태복음 68절을 읽고 자신의 말로 다시 써 보십시오.

 

 

2. 이사야 6524절을 읽고 자신의 말로 다시 써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아시는 분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실 것을 이미 다 준비해 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냥 주시지 않고, 우리가 구할 때까지 기다리실까요?

 

Q.야고보서 4:2~3에서 우리가 왜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기도해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잘못을 구하는 것을 주면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함이 되기는커녕 해가 되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형편과 요구를 모른다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마다 요청해야만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상대방이 구하지 않더라도 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자녀가 꼭 무엇을 달라고 말해야만 부모가 주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부모가 생각하기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구하지 않아도 자녀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구하지 않아서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히브리서 416절을 읽고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2. 출애굽기 178~16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어떻게 할 때만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말렉을 이기게 하였습니까?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아말렉 군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모세가 두 팔을 들고 있을 때만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 모세가 두 팔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할 때만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해야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동안에만 승리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에게도 나름대로 믿음이 있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니 구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요!” 또는 미처 다 구하지 못한 것까지 다 응답해주시옵소서라는 편법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믿음이 과연 올바른 믿음일까요? 이것은 결코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2. 기도와 하나님 체험

 

에스겔 3637~38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1과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냥 주시지 않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기도 응답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로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에스겔 36:35~38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1.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여야 한다고 했습니까?

 

3. 그러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까?

 

 

기도란 하나님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한다니! 얼마나 흥분되는 일입니까? 하나님을 체험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의심, 갈증, 고통이 다 해결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셔도 기도하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실제로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하는 태도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응답받으면 문제가 해결된 것보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확신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로 인한 놀라움과 감격이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시고도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길 때, 그 순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지난날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방법이나 사람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새롭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은 사람과 방법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하여 체험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심지어 죄인이 되어 감옥에도 갔지만 성경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기도생활을 통해서 이런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어떤 문제의 해결책으로만 여깁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그제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문제의 해결뿐만이 아니라 우리와의 교제입니다.

 

A.W.크리스웰 목사님을 식사에 초대한 미국 텍사스 주의 어느 농부가 말했습니다. “이 일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농사짓던 농부들이 모두 엄청난 부자가 되었는데, 그 석유 매장지가 내 땅 울타리 바로 바깥에서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 근처의 모든 사람이 다 부자가 되어 도시로 떠났지만 오직 우리만 40년이 넘게 농사를 계속 지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간 그 사람들은 한 가정도 예외 없이 이혼을 했고 자녀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부유함 때문에 오히려 파멸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가정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면서 굳게 서 있으며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만 불행한 줄로 여겼는데 우리가 가장 복받은 가정임을 깨달았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된다고 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잃어버리면 그 무엇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만 기도하는 그릇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관심이 문제 해결에만 있지, 하나님께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Q. 여러분은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과의 교제입니까, 아니면 문제 해결입니까?

이사야 30:1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예수전도단에서 선교선 아나스타시스(Anastasis)호를 사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모금 캠페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헌금이 온라인으로 들어올 때, 모두 흥분했습니다.

마지막 잔금만 치르면 되는 어느 날, 로렌 커닝엄 목사님이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데, 회의장 어두운 구석에 누가 서 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선교선을 구입하여 사역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느라고 정작 예수님은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날로 모금이 뚝 그쳤고 배 구입은 좌절되었습니다. 그 후 언제나 예수님과 모든 일을 의논하면서 사역함으로써 오늘날의 예수전도단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하여 기도하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게 훼방합니다. 그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우리는 경험하는 모든 것을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분별해 보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감사해야 할 경우가 있고, 편안할 때 그것이 시험일 수 있습니다.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의 감동이 오면,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겠다는 결단에 좌우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도의 눌림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할 제목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기도의 눌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기도제목을 떠오르게 하시는 방법으로 기도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주시는 기도의 눌림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의 눌림이 풀릴 때까지 주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Q. 여러분 안에 있는 기도의 눌림은 무엇입니까?

 

3. 기도와 영적 전쟁

 

다니엘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지금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가 다 부흥되기를 원하실 텐데, 왜 부흥하는 교회가 있고 그렇지 못한 교회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다 은혜로운 삶을 살기 원하실 텐데, 왜 은혜 충만한 성도가 있고 영적으로 메마른 성도가 있는 것일까요? 과연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인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유는 마귀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훼방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기도하라고 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Q.마태복음 18:18~19을 읽고,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 데 하늘이 먼저인지 땅이 먼저인지 답해 보십시오. 이것은 무엇에 대한 교훈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이 세상 임금”(12:3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2:2)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마귀는 이 세상을 지배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의 능력이 하나님보다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당장이라고 마귀와 그가 하는 일을 영원히 멸하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패배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마귀의 권세는 이미 꺽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일까요?

 

Q.베드로후서 3:9에서 하나님께서 왜 심판을 뒤로 미루신다고 하였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 심판을 미루신다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당장 영원한 지옥에 결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자들도 함께 지옥에 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저와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지, 사랑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 기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마귀는 꺾입니다.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귀의 일이 멸하고(요일 3:8)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실제 증명되는 사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도는 철도 레일과 같습니다. 기관차가 아무리 힘이 강해도 레일이 깔린 곳에만 달릴 수 있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리 강해도 성도의 기도가 있어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기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부흥되고 기도가 적은 교회는 침체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는 은혜가 충만하고 기도가 없는 성도는 영적으로 메마른 삶을 삽니다. 기도가 충분한 일은 역사가 많고 기도가 충분하지 못한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사무엘상 12:23에 어떤 죄가 나옵니까?

 

 

2. 여러분에게는 기도하기를 쉰 죄가 없는지 써 보십시오. (가정, 교회, 나라 등)

 

다니엘 919절에는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이것은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열쇠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하신 일들도 좌절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마귀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와 교회가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바쁘고 피곤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피곤해서 기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못해서 피곤한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중에도 끝까지 기도하는 자는 시험을 분별하고 이깁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도실에 들어가면 승리의 기쁨을 얻고 나옵니다.

사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모양의 싸움은 사실상 모두 영적 전쟁이며 기도의 싸움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전쟁은 기도의 역사였습니다. 군사력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전쟁을 기도를 통하여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7- 아말렉과 싸운 모세와 여호수아

역대하 201~4, 20~23- 모압과 암몬 연합군과 싸운 여호사밧 왕

열왕기하 191, 35- 앗수르 185,000명 군사와 싸운 히스기야 왕

열왕기하 616~17- 도단 성에 쳐들어 온 아람 왕과 싸운 엘리사

 

예레미야 33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도의 네 단계가 나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는 단계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33:3)

 

둘째,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기도하도록 감동하시는 단계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

 

셋째, 성도가 순조하여 실제로 기도하는 단계입니다.

 

넷째,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33:9)

이 방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

 

 

4. 기도와 시험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성도들을 유혹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공격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기도뿐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길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Q.마태복음 26:36~46을 읽고 답하십시오.

1.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부탁을 하셨습니까?

 

2.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3. 잠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하시며 굳이 잠자는 제자들을 깨우셨습니다.

너무 야박하지 않습니까? 새벽 단잠을 깨우는 자명종 벨 소리가 얼마나 싫습니까?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다 보면 졸려서 기도하기 어렵습니다이런 말이 교인들의 얼굴에 쓰여 있는 것이 역력합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기도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상기도, 금식기도, 굳이 왜 이렇게 힘들게 기도해야만 하는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641절에서 기도하는 것이 힘들어도 기도해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어느 권사님은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서 자명종 시계를 맞춰놓고 자는데, 가끔 너무 피곤한 날에는 하나님, 죄송해요!”하고는 다시 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권사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마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내게 죄송할 것 없다. 네가 큰일이지!”

만약 미친개 한 마리가 집 안에 들어왔는데도 졸린데 어떻게 합니까하고 마음 편히 잘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Q. 베드로전서 5:8을 읽고,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왜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지 말해 보십시오.

 

 

사탄은 계속하여 성도와 교회를 공격합니다.

시험이 계속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는 시험을 분별할 수 있고, 결국은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죄 짓는 일과 진실한 기도는 병행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그만두든지 죄 짓는 일을 그만두든지 합니다. 부부싸움도 기도하면 반드시 화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 기도가 잘 안된다면 자신의 영적 상태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죄 짓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적으로 시험이 든 것은 아닌지 점검할 때인 것입니다.

주님은 시험이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6:13)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씀을 깨어 있으라(38)”고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기도하는 것은 깨어 있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잠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며칠 나온 집사님이 목사님, 새벽기도도 좋지만 온종일 졸려서 아무것도 못하겠습니다. 저는 새벽잠이 많아서 새벽기도 체질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정신차리고 살자고 기도하는 것인데 오히려 기도하고 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하고 종일 몽롱하게 하루를 지내도,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유혹이나 시험이 올 때,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또한 이길 힘도 생깁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사는 성도는 아무리 똑똑하게 사는 것 같아도 실은 졸면서 몽롱하게 사는 것입니다.

안일한 기도생활은 유혹과 시련이 닥칠 때,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기도에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자고 쉬라하셨는데, 이 말은 기도할 때가 지났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기도하는 것과 고등학교 3학년 때 기도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아가 되기 전에 기도하는 것과 문제아가 된 이후에 기도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무장하는 길이요 어려움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란 어떤 일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Q. 다음 질문을 읽고 답을 써보십시오.

1. 출애굽기 4:13의 모세는 교만해 보입니까, 겸손해 보입니까?

 

 

2. 사무엘상 17:32의 소년 다윗은 교만해 보입니까, 겸손해 보입니까?

 

 

출애굽기 3~4장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내라는 말을 전하라했을 때, 모세는 못한다고 주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의 이러한 태도는 겸손한 것이 아니라 교만한 것입니다. 그 일을 자기 힘으로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무엘상 17장에서 소년 다윗이 담대하게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간 것은 교만이 아니고 겸손입니다.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하나님께서 친히 골리앗을 이기실 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가 하는 줄고 여기면 교만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줄로 믿으면 겸손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어려움이 생겨도 기도하지 않고, 겸손한 자는 사사로운 일에도 반드시 기도합니다.

 

청년 사역을 하는 어느 목사님은 얼굴이 예쁜 자매들이 결혼해서 불행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이들이 생기는지 궁금해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기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얼굴이 예쁜 자매들은 접근해오는 형제들이 많으니 결혼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해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특별히 예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자매들이 이외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결혼을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한다는 겸손에서 나온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시험을 볼 때 보통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만 기도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한 태도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주어진 달란트가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둘째,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24:41)

이 말씀은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흔히 핑계로 삼는 말씀입니다.

마음에는 기도하지 싶지만 육신이 약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도 인정해 주셨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내 마음과 의지가 강하게 원한다고 해도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기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졸려도 더욱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피곤하고 졸려서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잤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다 도망갔습니다. 제자 중 한 명은 벌거벗고 도망갔고, 베드로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렇지만 때마다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자신 앞에 놓인 십자가를 향해 담대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26:46)

그렇습니다. ‘겟세마네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바꿉니다.

 

Q.다니엘 6:10을 읽고, 다니엘이 시험을 이긴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십시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다른 신하들이 자신을 모함하고 옭아매기 위해서 왕의 권력까지 동원해 조서를 내렸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빼놓지 않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즐겼습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잡혔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형편과 여건에 따라 기도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마귀는 계속해서 어려운 형편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성경에는 형편이 좋아서 기도한 예도 없고, 그렇게 해서 역사가 일어난 예도 없습니다.

기도가 잘 되지 않는 형편에 있을지라도 영적인 숨통이 열릴 때까지 끝까지 매달리면, 한순간에 기도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기도를 방해하는 영적인 세력이 꺾였기 때문입니다

 

5. 역사 하는 힘이 큰 기도

 

야고보서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는 분명히 기도에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기도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생활에서 실패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생전에 엄청난 역사를 행했던 엘리야도 우리와 동일한 성정을 지닌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엘리야처럼 능력을 행하지 못할까요? 사실 우리도 엘리야처럼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를 하려면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기도 응답의 조건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일까요?

 

Q. 야고보서 1:6. 마가복음 11:24에 나오는 기도 응답의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보십시오.

 

 

첫째, 믿음의 기도입니다.

 

오랜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는 기도가 있고, 기도 시간은 짧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만약 열심히 기도하지만 기도하는 그 문제에 대하여 여전히 염려한다면 그것은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것을 믿고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어느 성도님은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새벽에 깨워놓고, 새벽기도회에 와서 간절히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회 후, 집에 가보니 깨워놓고 간 아들이 이불 속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불을 걷어치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놈아! 너는 어째서 그 모양이냐? 어미는 교회에서 가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왔는데, 정작 네가 자면 되니? 넌 안 돼, 안 돼.”

이 성도님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새벽에 드린 그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 단지 소원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소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대해 응답하신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기도는 선포로 변해야 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잘될 것을 믿습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10장에는 아모리 연합군과 싸웠던 여호수아가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10:8)하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모리 연합군이 여호수의 군대에게 쫓겨 도망가는데 해가 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멸하시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모자란다고 판단된 여호수아는 그때 하늘을 향하여 소리를 쳤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10:12).”

여호수아가 감히 태양아, 달아, 멈추어라!”하는 놀라운 선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선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Q. 사도행전 3:6, 9:32~43을 읽고, 베드로의 선포를 써 보십시오.

 

여러분이 중증 환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시겠습니까?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 8년 된 중풍병자 애니아, 죽었던 과부 다비다 등에게 선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같으면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선포했습니다. 자신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치실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일어나라하고 선포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우리의 기도는 간구하는 기도에서 선포하는 기도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Q. 다음은 기도할 내용입니까, 선포할 내용입니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하였다.

 

둘째, 순종의 기도입니다.

 

Q. 요한복음 15:7을 읽고, 기도 응답의 조건으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써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놀라운 약속의 말씀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기도하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약속의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의 순종을 전제로 한 약속인 것입니다.

Q.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합니까? 예를 들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합니까? 아니면 듣고 아는 정도입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정말 좋을까요?

우리는 고난과 고통은 피해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때로 찾아오는 삶의 역경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일 날씨가 맑다면 사막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때로는 역경이 필요합니다. 역경은 힘들지만 그 열매는 단단하고 풍요롭기 때문입니다. 상처 난 조개 속에서 아름다운 진주가 발견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호두농장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가 1년 동안 날씨를 주관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대로 한 해 동안 모든 기상 조건이 호두농사에 적합하도록 바꿀 수 있었습니다. 단 한 번의 폭풍이나 비바람도 없었으며 오직 햇볕이 쨍쨍한 맑은 날뿐이었습니다.

드디어 수확의 때가 이르렀고, 농장주는 호두나무마다 가득 달린 열매를 보자 무척 자랑스럽고 기뻤습니다. 호두열매를 거두어 설레는 마음으로 알맹이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단단한 호두껍질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호두농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지만 결국 그가 거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 주님의 말씀이 늘 우리 안에 거한다면 삶에 찾아온 역경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재, 의인의 기도입니다.

 

Q. 야고보서 5:16에는 어떤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까?

 

 

한 교우의 가정예배 때 있었던 일입니다.

가장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가족을 향한 축복권이 있다라고 배운 부인 집사가 남편 집사에게 가족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해달라고 강권했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가 무릎을 꿇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남편 집사가 마지못해 먼저 아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다음 차례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려는데, 아들이 킥킥하여 웃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밤늦게 술에 취해서 오는 일이 예사고, 아빠 엄마가 늘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목사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무리 생각해도 웃겼던 것입니다.

그 아들의 웃음에 남자 집사도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자기 자신도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남자 집사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평소 삶이 바로 되어야 가족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음을 너무나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는 좋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 위에 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고,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정결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의 사람만이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Q. 요한일서 19절에서 어떻게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까?

 

 

넷째, 이기는 기도입니다.

 

Q. 창세기 3228절에서 이스라엘의 이름 뜻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했다는 말은 야곱이 응답받을 때까지 매달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야곱에게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하되 응답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중단하기를 반복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안 된다는 응답일지라도, 응답받았다는 것과 그냥 포기하는 것은 다릅니다.

 

Q.마태복음 26:44에서 예수님은 몇 번 기도하셨다고 했습니까?

1. 마태복음 2644절에서는 예수님은 몇 번 기도하셨다고 했습니까?

 

2. 고린도후서 128절에서 바울이 몇 번 기도하였다고 했습니까?

 

 

3. 열왕기상 1841~46절에서 엘리야가 몇 번 기도하였다고 했습니까?

 

 

세 번, 일곱 번 기도하는 것은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기도의 눌림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하여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일치의 기도입니다.

 

Q. 마태복음 1819절을 읽고, 응답을 받는 기도의 조건을 찾아보십시오.

 

 

성도는 개인기도도 물론 열심히 해야 하지만, 반드시 합심기도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모여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합심기도가 될 수 는 없습니다. 합심기도란 말 그대로 성령 안에서 마음을 하나로 합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은 켤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영적 전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7)고 했습니다.

마귀는 분열의 영으로서 틈만 있으면 가정에서,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킵니다. 마음이 갈라지게 만들고 서로 갈등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기도생활을 원한다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분열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옮고 그름만 주장하면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옮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는 것보다 그리스도인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가 되었으냐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사랑의 기도입니다.

 

Q. 이사야 586~9절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2. 그리하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가장 간절한 기도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요, 자아가 죽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금식은 사랑하는 삶, 나누어 주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잘되기를 축복해 주며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Q. 요한일서 321~23, 514~15절에서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믿음 다지기

 

이번 단원을 예습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깨닫게 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잠잠히 묵상해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의 음성이라고 붙잡은 내용을 한두 가지로 정리해보십시오. 그리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예습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나 성구는 어떤 것입니까?

 

-위의 내용을 여러분 자신의 기도로 바꾸어 써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적용하라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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